베네수엘라의 비극에 대한 FT와 Ricardo Hausmann의 대화(번역) 일반경제

< 아래 글의 원문은 다음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인터뷰 podcast는 다음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인명이나 대화체로 인한 불필요한 내용들은 일부 번역에서 제외했습니다>  
 

CG: Cardiff Garcia (FinancialTimes 기자)

RH: Ricardo Hausmann

 

CG: 좀 더 넓은 관점에서 현 사태를 보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역사로부터 시작하고 싶네요. 1950년대 말 잠깐 독재정권을 거친 후에 베네수엘라는 민주주의를 회복했고, 1970년대는 석유로 인한 큰 호황과 불황을 겪었죠. 그 시절에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어땠는지, 어느 정도 석유산업에 이미 의존하고 있었는지그로 인한 왜곡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는지 등을 얘기해 줄 수 있나요

 

RH: 석유는 1925년에 베네수엘라의 최대 수출품목이 되었고, 1929년에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석유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1965년까지도 줄곧 그랬죠예컨대 1925~1975년의 50년 동안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성장하는 국가였습니다. 남미의 매우 가난한 국가로부터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왔는데, 인구가 7백만 정도 되던 나라에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에서 70만 명 쯤이 이민을 왔고요. 이웃 콜럼비아에서도 100만 명 정도가 왔을 겁니다

 

그렇게 흡인력이 있었죠. 부유하고, 번영했으며, 엄청난 자원을 바탕으로 인프라 투자를 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면서 교육, 보건, 공공주택 등을 우선순위로 두었습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육까지 무료로 제공했죠. 전기나 수도료도 아주 쌌고요. 국가가 중심이 되어 웅장한 계획들이 세워졌는데, 철강, 알루미늄, 조선 등등에 투자를 했지만 1980년대에 이것들이 큰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상황이 아주 나빠졌습니다그리고 당시의 정부는 석유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단기적 현상이라고 믿었고, 움츠리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통제를 하며 기다리면 좋은 시절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25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죠. 그래서 1989년쯤 되자 정부는 더 이상은 견딜 수 없고 규제를 완화하고, 구조조정과 개방을 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이게 정치적으로 매우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1992년에 차베스가 군사 쿠데타를 시도했고, 그 결과 1993년에는 개혁을 반대하는 대통령이 선출됐는데 1996년이 되자 그도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1997, 8년에는 개혁의 성과가 나와야 하는 시기였는데, 석유산업과 생산부문 개방의 성과로 오랜 만에 대량증산이 될것으로 기대했죠. 그런데 1998 1월이되면서 유가가 폭락했고, 8월에는 러시아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습니다.그 결과 이머징 마켓 전반으로 악영향이 전파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도 유가하락과 금융위기 전파의 효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해 12월에선거가 있었는데, 휴고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죠

 

CG: 1980~1990초에일부 개혁시도가 있지 않았나요? 석유산업의 문제도 있었고 IMF의권고도 있었고요. 이런 것들이 1988년의 Perez대통령 선출 이후에 시작되었는데 그건 왜 잘 안된 거죠? 또는 왜 그리 인기가 없었죠?

 

RH: 제 생각에 Perez는 거대한 재정적자(GDP 10%)를 승계받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에 접근도 할 수 없었고, 외환보유도 마이너스였죠. 그 상황에서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 도움의 요청, 부채조정 및 개방뿐이었어요. 이전 정부가 1986년 유가폭락 기에 외환보유를 다 써버렸으니까요. 그의 첫 임기에는 유가가 4배가 올랐습니다. 두 번째 임기에는 나눠 줄 것이 없었죠. 제 생각에는 이념이나 정치적 변화 같은 거라기 보다는 상황 변화 때문에 개혁에나선 것이라고 봅니다. (역주: 질문을 Perez가 왜 개혁정책을 썼는가로 약간 오해한 듯함)

 

CG: 정확히 말하자면 Perez의 첫 임기는 1970년대였죠. 저는 그의 두 번째 임기 때 얘기를 하는 것이고요. 그는 반개혁론자인 Caldera 대통령의 뒤를 이어서 대통령이 됐습니다. 차베스가 포퓰리즘을기반으로 집권했을 때의 베네수엘라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주겠습니까?

 

RH: 과거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는 정쟁이 매우치열했다는 겁니다. 여당이 된 정부나 정당이 다음 선거에 재선될 확률이 50%도 되지 않을 정도였죠. 하지만 80~90년대의 상황이 매우 안 좋다보니 차베스는 상당히 매력적인 담론을 펼 수 있었습니다. 정쟁이 아무리 심해도 다 똑같은 정치인들끼리 하는 짓이지만 자신은 그와 다르다는 거죠. "여러분들이 못 살게 된 것은 부패한 정치인들 때문이다. 내가 나서서 여러분이 빼앗긴 돈을 회복하겠다"라는 거죠그것이 그의 원래의 담론이었고, 정권을 잡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니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몰아낼 개혁가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구태 정치의 정당을 몰아내고 새로운 종류의, 좀 더 군부적 성격을갖는 정치 리더쉽으로 체제를 변환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CG: 맞습니다.좀 더 군부적 성격의 정치 리더쉽이자 그의 개성을 기반으로 한 추종집단이 되었죠. 그가 집권한 기간의 정책을 얘기하기 전에 잠깐 그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사용한 레토릭이나 포퓰리즘 전술에 대해서 알고 싶네요. 서방의 합리주의자 기준에서 보면 말이 안되는 일들을 벌이면서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정치적 능력이나 언어들은 무엇이었다고 보시나요?

 

RH: 집권초 2년 정도 그는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임기를 늘리고, 재선확률을 높이고, 국회를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변화시켜 유순하게만들고, 사법 시스템을 전면 개편할 권한을 확보하는 등의 작업이죠. 경제에는 크게 손대지 않았습니다. 전임 대통령 때 임명된 재무장관을 유임시키고 정책에도 별 변화가 없었죠. 그러다 2000년에 새 헌법으로 재선되고 나서 경제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과거보다 유순해진 국회를 향해 대통령에 법률을 공포할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죠 그리고 하루만에 48개의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사전 심의도 전혀 없이요. 그로 인해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고, 실제로 48시간 동안은 실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기는 크게 떨어졌고 분위기는 나빴죠.  

 

그러자 그는 석유회사들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회사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석유회사가 파업에 나서자 3 5천 명 직원 중 2만 명을 해고하고 직접적인 통제에 나섰죠.  당시에 그는 인기가 떨어지고 대규모 정치적 저항에 직면해 있었는데 마침 유가가 상승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의 진짜 포퓰리즘 정책은 정권 초가 아니라 2003~4년에 시작된 겁니다. 그는 석유로 번 돈을 이용해 대규모의 복지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쿠바로부터 조언을 받은 것들이죠.

 

2003년 근방에 그는 환율통제와 가격통제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파업으로 인한 석유생산 중단 등 위기 대응용으로 시작된 건데 2004년 이후에 유가가 상승하고 외환보유고가 늘면서 이제는 통제를 풀어도 됐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들은 이를 민간섹터에대한 통제수단으로 지속시켰습니다. 민간부문을 길들이고 정부관료들이 하는 결정에 목을 매도록 하는 방법이었죠. 이런 논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우리는 정부지출을 늘릴 거지만 가격을 통제하고 있으니까 물가는 오르지 않을거야. 수입도 통제하고 있으니까 외환문제도 나지 않을거야" 또한 그들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믿기 힘든 거액을 국제시장에서 빌렸죠.  국제 자본시장은 베네수엘라에 기꺼이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엄청난 석유자원이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석유 매장량이 세계 제일 수준인데다가 유가는 상승 중이었으니 담보의 가치도 같이 올라갔죠. 2004년에 베네수엘라의 외채 규모는 250억불정도였는데요, 지금은 178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됩니다. 석유 호황기에 7배 정도 늘어난 셈이죠

 

CG: . 그런데명확히 하자면 제가 말하는 포퓰리즘은 경제적 포퓰리즘이나 반엘리트 주의뿐 아니라 20세기 남미에서 만연한 반다원주의나 배타적 포퓰리즘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그가 경제정책을 변화시키기 전에 실시한 초기의 제도적 변화도 매우 포퓰리즘적 접근이라 느껴지는군요. 국영 석유회사의 직원 2만 명을 해고한 사례도 흥미로운데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칠 만한 상당한 두뇌유출과 인적자본의 손실처럼 보이는 군요

 

RH: 엄청난 손실이었습니다. 석유회사의 경영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감을 드려 보죠. 1998, 차베스 집권 직전 연도에 베네수엘라는 하루에 370만 배럴의 석유를생산했습니다. 지금은 2백만 배럴 정도를 생산하죠. 베네수엘라가 당시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면-엄청난 매장량을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지금보다 2백만 배럴은 더 생산했겠죠. 그러니 역사적으로나 날아간 기회비용 측면으로 보나 엄청난 붕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유산업의 붕괴는 두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대량해고로 인해 산업에 축적된 모든 노하우와 수백 년의 경험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해고되었을 뿐 아니라 박해를 받아 많은 이들이 나라를 등졌죠. 그 덕에 이웃 콜럼비아에 석유 붐이 일어났습니다. 석유 채굴기술이 뛰어난 베네수엘라 기술자들 덕에 콜럼비아는 똑같은 유정에서 하루 20만 배럴 생산하던 것을 지금은 100만 배럴씩 생산합니다. 둘째,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석유회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석유회사로 하여금 엄청나게 많은 사회적 프로그램들을 후원하도록 만들었죠. 그 결과 회사는 투자재원이 고갈되고, 경영의 부패도 엄청났습니다. 외국 석유회사들이 정부에 석유 조달 프로젝트 비용이 실제보다 몇 배씩 부풀려진다고 불만을 표시하거나, 국영 석유회사에서 수백만 달러씩 빼돌린 사람들이 미국에서 적발되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죠그러니 그들은 황금알을 낳는 닭을 망친 게 맞아요. 당시에 그들 자신이 만들어서 발표한 계획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을 6백만 배럴까지 늘리겠다는 거였습니다. 늘리기는 커녕 엄청나게 줄어드는 것도 막지 못했죠

 

CG: 아까 유가 상승기의 가격 및 외환통제 얘기를하셨는데요. 그 외의 다른 정책, 특히 국유화를 포함해 민간에 영향을 미친 정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RH: 2004년부타 외환 및 가격통제가 실시되었는데요. 차베스는 2006년에 재선에 성공합니다. 2007년 초에 그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대규모의 국유화를 시작합니다. 당시는 유가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힘이 있었죠. 예를 들어 그는 Verizon이 소유했던 통신회사를 국유화했고, 멕시코기업들이 가지고 있었던 3개의 시멘트 회사, 최대 규모 은행중의 하나, 슈퍼마켓 체인 등도 국유화했습니다. 370만헥타르에 달하는 토지도 국유화했죠. 초기에 돈이 많을 때는 대금을 지불을 하고 샀지만, 그가 싫어하는 사람이 소유한 경우에는 그냥 몰수해버리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석유회사들과의 계약을 변경해 미래의 기대수익을 당겨서 꺼내 쓸 수 있도록 만들었죠. Exxon 등 몇 개 외국 정유사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국제 재판소 판결절차가 진행중인데요. 합하면 소송규모가 160억 달러에 달합니다. 외국인에 대한 것만 그렇죠

 

차베스는 석유회사에 용역을 제공하던 회사들도 몰수했는데요. 그들이 제대로 대금지불을 받지 못한다고 항의하자 아예 몰수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베네수엘라 경제의 상당부분을 장악했는데요, 그들이 장악하고나면 회사가 무너져 버리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습니다. 생산이 붕괴되어 버렸죠. 철강회사 국유화를 예를 들면 국유화 당시에는 5천명의 근로자가 450만 톤의 철강을 생산했는데, 지금은 2 2천 명의 근로자가 20만톤 가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알루미늄 생산량이 100만톤정도가 됐는데 지금은 사실상 생산량이 0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한 일은 경제를 몰수해서 공공화시킨 뒤 붕괴시킨 겁니다. 또한 민간 섹터에서도 많은 제약들을 부과하는 동시에 재산권에 대한 불확실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른 이들의 재산이 전부 국유화고있는데 언제 내 차례가 올 지 알 수 없으니까요. Owens-Illinois는 병 제조공장이었는데 국유화되었어요. 병을 왜요? 다른 회사는 세제를 제조하는 업체인데 국유화 됐어요. 세제를 왜요?  그런 식이니 다른 모든이들은 언제 자기차례가 오게 될 지 알 수 없었던 겁니다.

 

CG: 이 정책들은 경제의 기본 측면에서 확실히 문제가 있는데요, 이런 정책들을 실시하면서도 차베스는 어떻게 인기와 권력을 유지했을까요? 그가 석유 수입을 바탕으로 해외차입을 해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지속되기는 어려워도 많은 이들이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의 개인적 매력이 작용한 걸까요? 아니면 둘 다일까요?

 

RH: 물론 차베스는 확실히 독특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2012 10월선거 전 여론조사에서...질문이 '나라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였는데 60% 이상의 국민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잘 몰랐던 것은 그 해에 석유가격이 104(달러?)였는데 정부가 GDP 18% 재정적자를발생시키고 있었다는 것이죠. 18% 적자는 무시무시한 숫자입니다. 그리스 정부가 겪은 최악의 시기에도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석유 호황기 한 가운데여서 수익을 비축해 놓고 있어야 할 시기에 18%의 재정적자를 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죠.  거꾸로 계산해 보면 당시 상황에서 재정균형이 가능하려면 유가가 200이 되었어야 했어요. 말하자면 그는 2012년에 마치 유가가 200이나 되는 것처럼 돈을 쓰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생산의 비효율성이나 그런 것들은 석유수입이 많았기 때문에 덮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돈을 재분배하는것으로 사람들은 만족했으니까요.

 

CG: 알겠습니다. 그럼 2012년부터 현재 마두로 정권까지의 기간으로 넘어가 보죠. 어떤 것들이 바뀌고 또 바뀌지 않았나요? 그리고 현재의 베네수엘라의 붕괴 상황에 대해서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RH: 아마 차베스는 다른 이들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정확히 언제 죽어야 할 지 알고 있었습니다.그는 2012 12월에 공식석상에서 사라졌고 2013 3월에 죽었죠. 그 즈음에 자본시장에서는 당신들이 너무 많은 돈을 빌려서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말합니다. 베네수엘라는 2007년부터 중국에서 엄청난 금액을 빌렸습니다. 차입액이 560억 달러에 달하는 데요, 올해 베네수엘라 총 수입액이 160억 달러입니다. 그러니 총수입의 3.5배 수준을 빌린 거죠. 2013년이 되자 사람들은 베네수엘라의 해외차입액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2013년 내내 유가는 여전히 100달러 수준이어서 아직도 높았지만, 베네수엘라는 더 이상 전처럼 돈을 빌릴 수 없었고, 국내경기는 불황에 돌입했습니다. 환율은 급등했고, 암시장 환율은 수백퍼센트씩 절하됐죠.

 

그리고 2014년 여름이 되자 유가가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렇게 되자 금융시장은 물론 석유판매 수익도 끊기면서 수입품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사라졌죠. 수입업자들은 조금만더 조금만 더 하면서 기다렸지만, 결국 대금이 지불되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베네수엘라를 떠나기 시작했죠. 항공사 같은 회사들은 문자 그대로 떠나버렸습니다. 받지 못한 빚이 40억 달러에달하자 운항을 중지해 버린 것이죠. 지금은 베네수엘라를 드나드는 여객기의 숫자가 매우 적습니다. 어느 정도로 단절되었냐면 쿠바로 드나드는 운항편의 수가 베네수엘라보다 5~7배쯤 많을 겁니다.

 

더 이상 빚을 질 능력이 없던 정부는 두 가지를 결정합니다. 첫째는 월스트리트의 부채는 계속갚겠다는 것인데, 자본시장이 막혀서 부채를 연장할 방법도 없지만 말이죠. 다음으로 그들은 월스트리트는 석유 판매 수익을 버는 곳이니까 빚을 갚고, 그 외의 다른 부채에 대해서는 전부 채무 불이행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그걸로 수입(import)을 하고요. 이 결정의 결과로 전체 수입(import) 80%, 민간부문 수입의 90%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원자재도, 중간재도, 부품도, 자본재도 사 올 수 없었죠. 이는 국내생산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공식 통계상으로 1인당 GDP의 감소분은 37%입니다만, 유가하락의 소득효과까지 계산하면 국민소득은 50%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거기에 정부와 공공부문의 과측정 및 기타오류 등을 제외하고 농업, 광공업, 건설 등 실물부문만 보면 경제의 축소분은 55%가 넘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산도 소득기반도 붕괴되었죠. 최저임금의 수준을 보면, 베네수엘라에서는 물가상승률이 엄청나서 사실상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이 되어 버렸는데요, 암시장 환율 기준으로 측정된 중위 임금 수준은월 20달러 정도입니다.

 

아마 암시장 환율 기준으로 측정된 임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섭취열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측정해 왔습니다. 임금을 이용해 시장에서 가장 싼 식품들을 구매하면 섭취열량을 얼마까지 높일 수 있느냐를 본 것이죠. 2012년 계산에서는 최저임금으로 한 가정이 하루에  55천 칼로리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7천 칼로리에 불과합니다.그러니 당신이 중위임금으로 5인 가정을 지탱하고 있다면,소득 전부를 오로지 먹는 것에만 사용해도 생존이 어려울 지경이죠. 집이나 신발, 교통 그런데 드는 돈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요.

 

1인당 소득이 이해하기 힘든 수준까지 낮아지자 의료보건같은 공공서비스의 붕괴도 나타났습니다. 믿을 수 없는 정도로 말이죠. 사람들이 글로 쓰는 내용들을 보면 퓰리처 상을 확실히 받을 것 같은 사연들이 넘쳐납니다. 생존율 감소나 이미 사라진 전염병의 부활 같은걸 보면...베네수엘라에서는 1961년에 말라리아가 사라졌습니다. 미국보다도 먼저였죠. 현재는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고요, 홍역도 엄청나게 돌고 있습니다. 에이즈 치료약도 없고, 고혈압 치료약도 없습니다. 신장투석기도 없고 암치료약도 없죠. 보건수준의 몰락뿐 아닙니다카라카스(역주: 베네수엘라의 수도)는이제 살인 범죄율이 세계 최고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세계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을 앞서게 되었죠. 이게 생활수준의 몰락이 빚은 일들입니다.

 

금융적 시사점도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이 너무 빨라서 사람들이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화폐는 아무도 붙들고 싶지 않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죠. 경제학적 용어로 화폐의 유통속도가 크게 올라가면 경제에 도는 돈은 어떤 면에서 점점 줄어듭니다. 보통 M2라고 부르는 통화량이 2012년의 암시장 환율로는 550억 달러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30억 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은행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전부 2억 달러가 채 되지 않아서 시스템이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여전히 지점이나 ATM 등은 남아 있는데 자산의 가치는 80% 이상사라져 버린 것이죠.

 

CG: 공식적 통계수치는 실제 참상에 대해 저평가하고있다는 말씀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서방사회에 비교할 만한 사건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요. 지금 생각나는 것으로 1990년대 초 소련의 쿠바에 대한 보조금이 중단되자 쿠바경제에 실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는 독자로부터의 다음 질문으로 연결되는 데요. 경제적 파괴 이후 지금의 요소시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피해가 회복불가능한 수준인가요

 

RH: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첫 번째 중요한 피해는 인재의 대량유출입니다. 두 번 째는 매우매우중요한 사업체들이 사라지고 또 떠났다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상황이 좋아지려면 거시적 정책에 대해서 기업들이 시장에서 창출된 기회를 활용하는 것으로써 화답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업들, 생산을 조직하고 기회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없다면 정책이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경제가 활발히 반응하기는 어렵죠. 그런 면에서 피해는 엄청나고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체제가 바뀐 후에도 옷장에 숨겨진 해골(역주: 지금은 모르고 있는 피해들)을 많이 발견하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알바니아 정부에도 조언하고 있는데요. 알바니아는 45년 간 Enver Hoxha 독재 치하에서 유럽의 북한 같은 존재로살아왔죠. 45년 간 공산주의 체제 하에 있었고, 공산주의가 붕괴하자 경제는 더 피폐해졌습니다. 인구의 1/3이 떠나 버렸고요. 하지만, 지난 20년간 회복의 길을 걸어 왔고 이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제게는 알바니아가 베네수엘라 국민들에 희망의 메시지가된다고 봅니다. 끔찍한 시기를 거치고도 회복과 추스림이 가능하다는 것을요. 삶을 더 살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게 믿고 싶군요.  

 

CG: 당신에게 이 일이 어떤 개인적 의미를 갖는지는 묻지 않았는데요. 베네수엘라인이기도 하지만 정부에 대한 비판적 태도 때문에 기피인물로 찍히시지 않았나요? 당신 개인의 삶에 정부와의 반목이 어떤 경험으로 다가 왔는지 묻고 싶군요.

 

RH: 우선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들이 본국에 많이 살고 있었는데 지난 수 년간 외국으로 많이 떠났습니다. 세계 각지로 흩어졌죠베네수엘라 판 디아스포라인데요, 여기저기 타지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제 친척들과 아이들은 모두 떠났고요,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은 너무 힘들어서 꿈도 희망도 없어졌죠. 저는 대학교수인데 인생의 큰 야망을 품고 졸업하는 학생들을 늘 보면서 지냅니다. 베네수엘라에 사는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은 더 이상 큰 야망을 품을 수 없죠.무너져버린 인생이 가장 큰 고통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물론 정부는 제가 칼럼을 쓴다는 이유로 공격을 하거나 온갖 그럴듯한 음모론을 만들어 뒤집어 씌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잡아 넣을 수는 없으니까 대신 기자인 처남을 감옥에 가두었죠. 그 자체가 우리 가족 모두에 고통의 경험입니다. 그러니 이 억압과 압제, 희망의 파괴가 지난 몇 년간 제 삶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CG: 처남이 투옥된 것은 몰랐는데 안타깝네요. 여전히 수감중인가요 아니면 석방되었나요?

 

RH: 7개월 동안 매우 비인간적인 수용시설에 감금된후에 지금은 가택연금 상태로 있습니다.

 

CG: 다시 한 번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마무리 단계로 베네수엘라의 부채문제 해결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묻고 싶은데요.미국의 제재가 실시 되면서 미국 투자자가 구조조정이나 채권교환에 나서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베네수엘라의 부채를 궁핍화채권(hunger bond)라고 불렀는데요 그에 대해 설명을 부탁합니다.

 

RH: 그러죠대개 자본시장이 자금을 빌려줄 때는 채무자가 그 돈으로 가치를 창출해서 돈도 갚고 자신에게 도움도 되는 그런 상황을 그리게 됩니다. 이런 경우 자본시장은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마치 천사같은 존재죠. 하지만, 미래를 담보로 당장 현금을 당겨 쓰려는 정부와 상대하는 경우에 그 정부는 확보된 자원을 미래가치를 창조하기위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 당신은 권위적 정부의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통치에 돈을 대고 있는것이고 미래에 갚지 못할 짐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나라의 앞날을 망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종류의 부채를 제가 hunger bond라고 부르는 겁니다

 

분명한 사례로서 골드먼 삭스가 정부에 50%의 이율로 8 5천만 달러를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50%의 수익률이 날 수 있는 프로젝트란 세상에 없죠. 그러니 정부는 당장은 8 5천만 달러를 얻지만, 나중에는 능력을 넘어서는 부채를 갚아야 해요. 그런 수익이 날만한 투자 프로그램에 돈을 넣는 게 아니니까요. 이런 부채는 당장의 정권을 유지시키는 목적일 뿐이라는 점에서 추악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한 정권의 부채일 뿐 이지 국가와 국민의 책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권은 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국민의 미래를 보장할 수도 없으니까요.    

 

<이후에 베네수엘라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좀 더 세부적인 이슈들에 대한 약간의 의견교환이 있었는데 이건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궁금하시면 링크의 원문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 법인세 논쟁에 대한 간단한 생각 > 일반경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법인세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 오는 듯 하다. 자세하고 어려운 설명은 조세재정전문가들께서 해 주셔야 하고, 유권자인 일반 시민들을 위하여 (실제로는 모자란 내 능력범위를 감안한) 경제원론 수준의 기본적 내용만 짚고 넘어가 보려 한다.

한국의 법인세가 명목세율은 높은데 실효세율은 낮으니 하는 논쟁은 사실 기본적 질문을 한참 거친 후에 나와야 적당한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점심메뉴를 아직 결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회사앞 식당의 설렁탕이 딴 집보다 싱거운지 아닌지를 싸우는 꼴이다. 최종적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 번은 던져 봐야 하는 질문이고, 때로는 결정에 의외로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지엽적인 요소라는 뜻이다.

법인세 논쟁을 보면서 오늘의 점심메뉴를 고를 때 나오는 수준의 날카로운 지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세금의 기본적 속성부터 하나씩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1) 모든 세금은 필요악이다.


세금을 많이 낼수록 행복한 사람은 없다. 나 말고 남이 내는 세금이라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그런 심성을 가진 분은 그냥 이 글을 그만 읽어 주시면 되겠다. 아무튼 모든 세금인상은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한 경우에 부작용과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간신히 해야 하는 것이지 '다른 나라는 많이 내니까 우리도 올릴 수 있다'라고 쉽게 주장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2) 모든 세금은 사람이 내는 것이다.


세상에는 온갖 명목의 다양한 세금이 있지만 결국 이를 부담하는 것은 사람이다. 세금은 돈에서 나오고, 돈은 결국 누군가 벌거나 갖고 있거나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법인세의 경우에는 흔히 오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업도 사람의 모임일 뿐이다. 기업에 법인세를 부과하면 '기업'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과 연관된 '사람들'이 세금을 낸다. 그러면 왜 그리 다양한 세목이 있냐고? 거위의 털을 뽑는 다양한 방법일 뿐이다. 거위의 입장에서 보면 목에서 뽑히나 가슴에서 뽑히나 엉덩이에서 뽑히나 어차피 모두 자기 털이다.


3)국세청에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이 실제로 세금을 내는 사람은 아니다.


친구들과 식당에 갔다. 돈을 내는데 (1번) 계산서를 각자 받아서 따로 나간다 (2번) 한 사람에게 돈을 몰아주고 그 사람이 대표로 계산을 한다. 이 때 1번과 2번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계산대 앞 풍경은 다를지 몰라도 실질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명목으로 누가 세금을 납부하든 지 간에 그 세금이 결국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는지는 따로 평가해야 한다. 이는 '조세의 전가(tax incidence)'라고 해서 초급 경제원론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부가세는 사업자가 모아서 납부하지만 실제로는 소비자와 사업자가 나누어 부담한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부가세가 붙으면 상품가격이 비싸지는 방식으로 자신도 이를 부담한다는 것을 알지만 평소에 상품가격이 비싸다고 불평할 때는 보통 그 부분까지 고려하게 되지는 않는다.

법인세의 경우에는 이보다 혼란이 훨씬 더 큰데, 부담하는 주체가 여럿이고 어떤 식으로 부담하는 지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법인세는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분담하여 낸다. 여기에는 주주, 종업원, 소비자, 심지어 하청업체까지 포함되어 있다.

법인세를 실제로 누가 많이 부담하고 있느냐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는 넘쳐나지만, 명확한 결론은 없다.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전제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한다'이다. "아 힘들어 못해 먹겠어, 때려 치우든지 딴 데로 가든지 해야지"라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현실은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오늘날과 같이 자본과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경제에서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 중에 가장 아쉬운 사람은 누구일까? 자본이나 소비자보다는 종업원이나 하청업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신의 임금이 오르지 않거나 깎이고, 하청업체가 가격 후려치기를 당하는 순간, 나아가서 직장과 거래처가 외국으로 사라지는 순간에는 법인세에도 책임의 일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기는 어렵다.

물론 상황이 늘 이렇게 흘러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증적인 문제이므로 실제로는 주주에게 대부분의 부담이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주주 중에서도 누가 더 부담하냐고 하면 물론 주식 보유 비중에 따라 비례적으로 부담할 것이다. 한 가지 문제는 모든 주주들이 고액 자산가나 재벌총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재벌총수는 원래 주식비중은 적으면서 경영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욕먹는 사람들 아닌가? 총수가 1%의 지분만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면 법인세 부담도 1%만 할 것이다.


4) 모든 세금에는 부작용이 있지만 성격은 다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소득세를 올리면 소득창출 행위가 줄어들 것이고, 부가세(소비세)를 늘리면 소비가 위축된다. 법인세를 늘리면 기업활동이 위축된다. 이 모두가 줄어들고 위축되어서 좋은 게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왜곡은 어차피 있는 것이고, 초점은 어떤 것이 그나마 부작용이 적고 그나마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고, 처한 상황마다 다르며, 영원한 논쟁거리다. 고소득자라면 돈 만을 위해 일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누진세로 인한 근로의욕 감퇴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같은 이유로 완전히 반대일 수도 있다). 소비세로 소비가 위축되면 대신 저축과 투자는 많이 할 테니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소비부진이 문제인 상황에선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 투자할 곳이 없고 사업전망이 나빠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지 법인세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다 (그러니까 비수를 꽂아도 된다?).

무엇이 더 중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대가를 치르지 않는 선택은 없다는 것이다.


5) 정치적 수용가능성


지금까지 읽으셨다면 "얘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이다. 그렇다. 내 입장은 "세금은 가능한 적게 걷을 수록 좋지만 꼭 걷어야 한다면 법인세보다는 다른 세금부터 올리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세가 불가피하고 실천 가능한 방법이 법인세 인상밖에 없다면 그게 대안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가 아무리 햄버거가 균형잡힌 최고의 음식이라 믿어도 같이 식사할 동료들이 설렁탕이 좋다는데 끝까지 우기다가 굶을 수는 없지 않은가?

법인세는 정치적 수용가능성 면에서는 확실히 잇점이 있다. 누가 실제로 부담하는지도 잘 모르고 따라서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눈에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세금에 비해 국민적 반발 정도가 덜하다. 연말정산 때 공제만 조금 줄어 들어도 좌우협동 대란이 일어나는 우리나라에서 이는 중요한 잇점이다. 정치인들, 특히 대중영합적 포퓰리스트의 관심을 더 끌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사정을 좀 아는 사람일수록 곱게 보이지는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비난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증세가 꼭 필요하고 법인세 인상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 결론


책임있는 경제학자인척 하는 사람으로서는 열린 결말이 좋을 듯하다. 법인세 인상은 우리 경제에 최선은 커녕 최악일 수 있지만, 그나마 가능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는 정도면 적당하겠다.


PS. 

하지만, 순진한 나로서는 정공법을 택하는 후보가 나타나기를 열망한다. 먼저 왜 정부지출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인지부터 설명하고, 다음으로 손쉬운 증세보다는 세출조정과 정부효율성 강화부터 먼저 할 것임을 선언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증세액에 대해서는 모두가 나누어 부담하자고 호소하는 그런 후보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보장세와 같이 지출목적이 확실히 드러나는 세금을 신설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세원으로는 급여부담금이나 부가세를 인상하는 것이 좋다고 보지만 너무 디테일한 얘기가 되니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 김재익 컴플렉스, 안종범, 그리고... > 법제도와 정치

내가 유학했던 학교의 경제학과 건물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실물크기 초상화가 걸려 있다. 1990년대에 새 빌딩을 지어 이사를 가면서 그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고 김재익 수석을 기념하는 방을 하나 만든 것이다. 나는 바로 그 방에서 박사학위 논문의 최종심사를 받았다.

젊은이에게는 영웅이 필요하다. 롤모델이어도 좋겠다. 김재익은 한 경제학도의 영웅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위기에 처했던 한 나라의 경제체질을 완전히 바꾸었다. 매년 30%씩 오르는 게 당연하던 물가를 한 자리수 이하로 잡았고, 금융실명제, IT산업 진흥, 시장개방 및 자율화를 추진했다. 당시로서는 전혀 당연한 어젠다가 아니었고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비전은 이후 30여년 동안 우리경제가 따라가게 된 (일부는 아직도 채 따라가지 못한) 길이 되었다. 그가 아웅산 테러로 불의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물론 사람의 일은 알 수 없긴 하다.

김재익은 전두환의 가정교사이자 경제수석이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독재자의 부역자였던 셈이다. 그런 김재익을 존경하고 롤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정치적으로 나와 반대되거나 심지어 모두가 미워하는 이의 밑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경제학자로서 뜻을 펼치고 세상에 공헌할 수만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 자리잡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아닌가 말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한국도 더 이상 1980년은 아니고 나도 김재익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래도 김재익 컴플렉스는 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안종범 수석의 일이 꽤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을 보니 말이다. 나는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석에서 한 두번 만난 적이 있다. 어느모로 보나 정상적인 경제학자이고, 옳은 판단력을 갖춘 사람으로 보였다.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서 한 사람의 경제학자로서 역할을 하다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안종범 수석이 왜 나락에 빠졌는지, 그가 큰 벌을 받아 마땅한지 아니면 억울한 면도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닌 듯 싶다. 나는 그가 원래부터 권력의 해바라기나 탐욕의 화신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서 권력의 틈새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데 실패한 많은 이들의 모습을 본다. 나라면 과연 다를 수 있을까? 나 스스로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남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높다.

어쩌면 오랜동안 가지고 있던 김재익 컴플렉스를 완전히 놓게 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뭐 어떤가?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껏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더 이상한지도. 아무튼 내일은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것이다.


< 보스턴 학살 > 법제도와 정치

문득 생각이 났는데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우연히 미국의 제2 대통령인 존 애덤스의 일대기를 다룬 미니시리즈를 본 적이 있다. 첫 회였는데 존 애덤스는 1770년에 일어난 보스턴 학살(Boston Massacre)이라고 불리는 사건에서 피고인 영국군인들의 변호를 맡는다.

보스턴 학살은 한 영국인 병사와 가발을 맞추는 상점의 사환 간에 일어난 사소한 시비가 집단 시위로 번졌고, 위협을 느낀 영국군의 발포로 다섯 명의 시민이 죽은 사건이었다.이 사건은 당시 영국지배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좋지 않았던 감정과 관련이 깊다. Paul Revere나 Samuel Adams같은 이른바 '애국자들(patriots)'은 이 사건을 독립운동의 불씨로 삼기 위해 열심히 반감을 부추기는 선전에 나섰다. 불과 6년 후 미국독립선언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성공한 셈이다.

아무튼 이미 잘 나가는 법관이자 정치적 명성도 있었던 존 애덤스는 만인의 공적이 되어버려 아무도 감히 변호를 맡으려 하지 않았던 영국 군인들을 변호해 줄 것을 의뢰받는다. 미니시리즈는 그가 겪었던 고뇌,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겪는 수모와 비난 등을 실감있게 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건에서 존 애덤스는 대단한 활약을 하였다. 결국 발포를 하지 않은 여섯 명의 군인은 무죄판결을 받았고, 발포를 한 두 명도 고의적 살인(murder)에서 과실치사(manslaughter)로 감형 받았다. 그가 남긴 변론의 일부는 지금도 미국에서 인용구로 종종 쓰인다.

"진실은 굳건한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나 성향, 또는 우리의 열정이 이끄는 방향이 무엇이든 간에, 그를 통해 사실과 증거가 바뀔 수는 없습니다."
Facts are stubborn things; and whatever may be our wishes, our inclinations, or the dictates of our passion, they cannot alter the state of facts and evidence

"유죄를 벌하는 것보다 무죄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나 범행은 워낙 많아서 그들 모두를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무죄인 사람을 법정에 세워 유죄 선고를 하고, 혹시 사형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시민들은 말할 것입니다. '내가 죄를 범하든 말든 상관 없어.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보호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시민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는다면 어떠한 안전도 다 끝일 것입니다." 
It is more important that innocence be protected than it is that guilt be punished, for guilt and crimes are so frequent in this world that they cannot all be punished. But if innocence itself is brought to the bar and condemned, perhaps to die, then the citizen will say, 'whether I do good or whether I do evil is immaterial, for innocence itself is no protection,' and if such an idea as that were to take hold in the mind of the citizen that would be the end of security whatsoever.

흥미롭게도 판결 이후 존 애덤스는 만고의 역적으로 취급받지도 않았으며, 그의 주가는 더욱 치솟았다. 이후 그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였으며, 신생국 미국의 기틀을 잡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제1대 부통령과 제2대 대통령이었고, 제6대 대통령 John Quincy Adams와 함께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 대통령이기도 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미국의 founding fathers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나와 소신껏 활동할 수 있었던 18세기 식민지의 성숙한 사회적 기반이 더 대단해 보인다.


< 저출산 문제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 > 일반경제

몇 주전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다.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란 곳에서 국회의원들께서 이런저런 돈 쓰자는 얘기와 자리 더 만들자는 얘기를 나누셨다 (물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는데, 나경원 위원장이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혁명적 사고,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다소 황당하다 싶은 정책 제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기사링크). 

그래서 던져 본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은 바로 '저출산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위원회부터 해체해야 하므로 원하던 답은 아닐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를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노동력의 축소로 인한 성장잠재력의 감소라는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사람 머릿수가 늘어나서 성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인구가 많아 GDP 세계 2위가 된 중국보다는 인구는 적어도 잘 사는 스위스나 북유럽 국가 쪽이 더 이상적일 것이다(나라 규모가 커야 국제사회에서 힘이 있다든지 인구가 많아야 그 중에서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도 나온다든지 하는 주장은 논외로 하자).


가끔 정말로 애 낳는 기계 쯤으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진짜 문제는 연금 및 의료보험 재정, 더 크게 보면 정부재정에 구멍이 나는 것이다. 보험료나 세금을 낼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할 노인들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출산율을 늘려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일까? 혹시 연금제도나 정부의 지출구조를 낮은 출산율 환경에 맞춰서 조정해 나가는 게 더 맞는 답은 아닐까?


"이보쇼, 2750년이 되면 대한민국이 없어지게 생겼는데(기사링크) 무슨 한가한 소리요?"


안 없어진다. 없어지더라도 최소한 저출산 때문은 아닐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700년 후를 걱정할 만큼 한가하다면 물론 다른 걱정도 많겠지만 말이다). 시간이 가면 출산율은 조금씩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 얘기는 뒤에서 더 하기로 하고, 일단은 국민의 행복한 삶이 궁극적인 목표이고, 재정압박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저출산의 흐름을 돌리는 것이 그 정도로까지 절박한 과제는 아니라는 점부터 이야기 해보자.

낮은 출산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 사회에서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연령대는 보통 15~64세로 본다. 즉, 0~14세와 65세 이상은 그 사회가 먹여 살려야 할 연령계층이다. 고령화가 되니까 노인층의 확대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면이 있는데 사실은 반대로 0~14세 층의 비중이 큰 것도 사회적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이들은 나중에 생산인구가 될 것이므로 일종의 투자인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결국 노인이 되면 부양해야 할 층도 그만큼 늘어난다.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자본축적도 더 되어야만 생산력이 유지된다. 실제로는 감가상각 등의 이유로 인해 저축률이 더 높아져야만 기존의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요는 인구변화는 장기적 균형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고, 한 사회 전체의 생산과 소비라는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이 꼭 나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는데, 보통 노령인구일수록 연금이든 의료비든 정부 부담이 크고, 14세 이하의 양육비는 주로 민간이 부담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보육수당 등 정부가 부담하는 부분이 점차 커지고는 있지만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것은 주로 부모의 몫이다. 더구나 선진국이 될수록 노인복지에 드는 비용이 보육예산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한다. 따라서 국가재정의 관점에서만 보면 14세 미만의 인구비중이 커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부담이 되는 반면, 노령인구의 비중이 커질수록 큰 부담이 된다.

저출산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시각과 국가재정 관점의 시각 사이에 이처럼 서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은  Lee, Mason and et al. (2014, 링크)의 주요 착안점이 되었다. 이들은 40개국의 국민이전계정(National Transfer Accounts) 자료를 활용해 각 국의 재정상황과 국민 생활수준(소비수준)을 최적으로 만드는 출산율을 각각 계산해 보았다. 한국의 경우를 소개해 보면 국가재정적 관점에서 볼 때 최적의 합계출산율은 2.07 수준이다. 반면, 자본확대의 필요성까지 감안해서 최적의 생활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출산율은 1.25~1.55 수준이다. 참고로 2010~2014년 한국의 평균합계출산율은 1.23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아이를 적게 낳으면 사회적 생산도 줄지만 비용도 줄어든다. 정부가 규모를 유지하거나 지금보다 더 키우려 하고, 젊은이들을 쥐어짜 노인을 부양하는 방식인 지금의 연금제도를 그대로 놔둔다면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크게 높여야 할 것이다. 반면, 만일 국민 각자가 잘먹고 잘사는 것이 목표라면 지금보다 약간만 출산율을 높일 수 있어도 큰 문제가 없다.


출산율은 사회환경의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변화가 극적이라서 문제이긴 한데 출산율의 저하는 사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우리보다 선진국인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출산율 저하 문제를 겪었거나 겪는 중이다. 

그런데, 앞선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경제성장과 사회적 환경변화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OECD 국가라 해도 미국, 영국, 프랑스나 북구유럽은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남유럽 국가나 일본은 출산율이 우리와 근접한 수준으로 낮다. 왜 그럴까? 아이를 낳는 것은 결국 여성이다. 따라서 여성이 그 사회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가 국가별 출산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관련하여 Feyrer, Sacerdote and Stern(2008, 링크)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한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낮고, 가사를 분담해 줄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거나 문화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출산율이 높다. 경제발전으로 사무직과 전문직 고용이 늘고, 여성의 교육수준도 높아지면 여성의 고용도 늘어난다. 하지만 사회적 관습의 변화속도는 이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 되고, 여성들이 큰 부담을 느끼면서 출산율이 떨어진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상황과도 정확히 부합한다. 하지만 Feyrer 등은 시간이 더 가면 사회환경도 점차 적응을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아버지와 남편들의 가사노동 분담이 늘어난다. 정부 및 기업도 육아휴직이나 보육시설의 확충 등에 나선다. 궁극적으로 가정과 노동시장에서의 양성평등이 강화되면 결국 출산율도 그 사회의 인구를 유지하는 수준(합계 출산율 2.1)에 가깝게 회복된다는 것이다. 일본과 남유럽은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고, 북유럽과 미국, 영국 등은 최종단계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 지는 모르겠다. 출산율도 다른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지위라는 요소 하나 만으로 설명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 여성의 사회참여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도 높다는 사실은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아래 그림은 OECD 국가의 25~34세 여성 풀타임 고용률(주 30시간 이상으로 정의)과 출산율과의 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Goldin(2016, 링크)에서 얻은 것이다. 이상치인 포르투갈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의 고용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도 높아지는 관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개인 차원에서는 직장을 다닐수록 출산과 양육이 더 힘들 것이므로 직장여성이 많을수록 출산율도 적어져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처럼 정(+)의 관계가 나오는 것은 사회적 환경의 차이라는 공통요소가 여성의 고용률과 출산율을 함께 높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생산참여 확대는 출산율 저하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앞서 우리는 15~64세의 연령층을 생산인구라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 중 절반은 여성이다. 이 연령층의 여성이 생산에 나서지 않고 집에서 논다면 그만큼 생산인구는 줄고 부양해야 하는 인구는 느는 셈이어서 사회적으로는 곱절로 손해인 것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특히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는 경우가 많다.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들을 가정으로 보내는 게 더 나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쪽이 더 낫다. 그렇게 하면 남성이 손해 볼 것이라는 생각은 단견이다. 여성이 가정에 묶이지 않게 되면 남성도 지금처럼 직장에만 묶이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결론을 내보자. 한국의 출산율이 급전직하한 것은 경제성장이 워낙 빨랐고, 여성의 사회지위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해소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요즘 나타나는 메갈리아 사태나 페미니즘 논쟁 같은 것들도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러한 사회변화의 일부분이라 생각된다. 정부나 기업도 아무 일 안하고 멍하니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너무 늦고, 너무 비효율적이고, 수동적이다. 저출산 대책 마련한다고 육아수당 몇 푼 쥐어주고, 미팅 주선하고, 청와대에 인구수석 만들고 해봤자 돈낭비에 비웃음만 살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저출산이 아니라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거기에 쓸 예산과 노력을 여성지위 향상과 경력보호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낫다. 나머지는 사회와 시장이 자연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다.

P.S. 

이 글에서는 연금제도나 국가재정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다. 출산율이 지금처럼 낮은 상태에서는 앞으로 국가재정이 파탄날 것이 예고되어 있는 셈이므로 이는 무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출산율을 높이려 하기보다는 연금제도를 수술하여 청년층에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를 없애고, 재정수입 및 지출의 구조도 크게 수술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이것들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최소한 가능성은 있는 반면, 단기간에 출산율을 높임으로써 연금이나 국가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보고 있다.    

요약

(1) 저출산 현상은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국가재정이나 연금수급의 관점에서는 큰 문제이지만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이 줄어드는 만큼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2) 한국의 출산율이 워낙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재정이 아닌 국민 생활수준의 유지 및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보다 약간만 올라가도 괜찮을 수 있다. 

(3) 출산율이 비교적 높은 선진국들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생산참여 기회를 높임으로써 이를 달성했다. 저출산의 문제는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여성이 직면한 사회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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