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에 관하여 9: 불평등은 확대될 수밖에 없는가? 피케티 이론의 평가> 불평등

오늘은 피케티의 이론을 평가해보자. 매번 강조하지만 피케티가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건 아니다. 맞으면 맞는대로 대비해야 하고, 틀렸다면 안심만 할 게 아니라 어디가 틀렸고, 그의 주장 중 건질 것은 없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번에 나름대로 피케티 책의 요점을 제시했더니(시리즈 글 4번 참조) 실제로 책을 읽은 '몇 안되는' 분들은 자신이 받았던 책의 인상과 좀 다르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럴 수도 있겠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경제학적 논점에만 초점을 맞춰 책을 읽게 된다.  피케티의 책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준구 교수님이 긍정적 서평(링크)에서 쓰신 것처럼 "분배의 공평성 문제를 이해하는 올바른 틀은 수학적 모형이 아니라 역사, 정치, 철학적 관점을 적절히 가미한 경제적 논리라는 점을 웅변으로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나무숲 내가 지적 소양이 부족하고 독서능력도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책은 읽기가 매우 고통스럽다 (모종의 사명감이 없었다면 두 세 chapter만 읽고 던졌을 것이다). 너무 길다는 것만 문제는 아니다. 논증 수준이나 논지가 일관되지 않아서 고통을 가중시킨다.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자세하고, 다른 부분은 매우 중요한 이슈인데도 이래도 되나 할 정도로 근거가 부족하다. 대체로는 학문적 객관성을 유지하지만 (특히 뒤로 가면서) 편향적, 감정적 서술도 곳곳에 드러난다. 어릴적 한 두 편 봤다가 기겁했던 프랑스 예술영화 같은 느낌이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영화들은 평론가들의 극찬, 다양한 해석 가능성, 대중성의 외면 등이 특징이다. 어릴적 프랑스인에 대한 나의 편견 형성에 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80년대 중반 '라붐'이후 대중적이고 때론 유치하기까지 한 프랑스 영화들을 접하면서 그런 편견은 많이 교정되었다).  

'라붐'의 그 유명한 디스코텍에서 헤드폰 씌워주는 장면. 알고보니 난 '라붐'은 본적이 없고 '라붐2'와 '유콜잇러브'를 봤다. 근데 이장면이 왜 그리도 생생한지. 

아...시작부터 또 삼천포 여행을 다녀왔다. 피케티 책의 비평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이미 훌륭한 서평은 차고 넘치니까 거기 더할 생각이 없다 (예를 들어 오석태(링크), 톰보(링크) 참조. 해외서평은 너무나 많으니 그냥 검색하시기 바란다. 스스로 세계최고 조만장자이신 빌게이츠의  글도(링크)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한다. "난 만수르하고는 격이 달라").   

피케티의 요지를 다시 한 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불평등이 심화되어 과거 제국주의시대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성장둔화로 버는 돈은 줄어드는 데 자본이 꼬박꼬박 많은 몫을 챙겨 가기 때문이다. 이대로 두면 상태가 심각해 질 것 같다. 그러니 고소득층과 자본가에 대한 세금을 크게 높여야 한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밑줄친 부분의 평가다.   

큰 난관이 하나 있다. 피케티 책은 본인의 이론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케티가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부분은 p.257~283 (번역본 기준)과 p.421, p.432, p.435~436 정도다. 그런데 깔끔하게 딱 떨어지지 않고, 역사와 실증자료 등이 뒤섞여 있어 경제학자조차도 논리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오죽하면 New York Times Magazine의 David Leonhardt가 피케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좀 쉽게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피케티가 엄청 단순화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만들어 줬다 (링크 참조. 번역은 내 맘대로 함):

수 백년 전의 가상의 마을을 하나 생각해 보세요. 인구도 늘지 않고 경제성장도 없는 그런 곳 말입니다. 매년 이 마을에서는 똑같은 양을 생산해서 똑같은 수의 사람들이 나눠가지죠 (대략 계몽시대 이전의 중세를 연상하시면 되겟습니다). 그런 성장없는 사회에서도 자본은 (뭐든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들, 석기시대의 짱돌도 포함) 가치가 있습니다. 

이 가상의 마을에 어떤 큰 농가가 있다고 합시다. 해마다 1만불 어치의 곡물을 생산해서 주인이 1천불의 이윤을 얻죠. 작은 농가는 1천 불 어치를 생산해서 1백 불의 이윤을 얻습니다 (똑같은 10%의 수익률입니다). 두 농가 모두 매년 번 돈을 다 써버린다면 상황은 늘 똑같을 겁니다. 불평등도 바뀔 게 없죠. 

하지만, 자본가의 엄청난 이점은 가진 것 중 조금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할 수 있다는 겁니다. 큰 농가가 1천불의 이윤 중 500불을 저축한다면 그걸로 더 많은 자본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윤은 더 커지죠. 혹시 작은 농가가 빚이라도 진다면 땅을 사버릴 수도 있습니다. 큰 농가는 연 이윤이 1,500불, 2,000불로 늘어나고, 저축액은 더 커지고, 또 더 많은 자본을 구입할 수 있죠. [이런 과정을 거쳐 불평등이 확대된다].  

너무 단순한가? 사실 단순한 것만으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경제학 이론에 대한 흔한 비판 중에는 '현실적이지 않다'라는 것이 있다. 위의 예를 보고는 '지금은 중세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비슷한 걸로는 '세상에 완전경쟁시장이 어딨어?'가 있다).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저 얘기에 살을 붙여 인구도 늘고, 성장도 하고, 은행,공장, 사무실을 집어 넣어도 근본관계가 여전히 성립하느냐다. 피케티의 논리는 꽤 호소력이 있다 (중세에는 강제로 빼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는 점을 빼고서 말이다) 위의 예는 g (성장률) = 0인 세계를 그렸다. 하지만, 피케티는 r(자본의 수익률) > g 이면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굳이 피케티 스스로가 든 예를 먼저 소개한 것은 내가 시리즈 4번 글에서 예로 든 혜리와 민아의 스토리가 아주 얼토당토 않은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물론 피케티가 그렇게 단순한 사람은 아니다. 책 구석구석에 불평등 확대의 다양한 요인들도 추가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중심이론은 간결하고 확고하다 (피케티 논쟁에서는 이런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Larry Summers, Daron Acemoglu 등이 피케티를 비판하자, 옹호자들 중에는 "오해다. 그런 얘기는 피케티도 했는데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와 같은 반응이 나왔다). 

"일단 읽어 보시고 나서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자. 이제부터 피케티의 예보다는 아주 조금 더 복잡한 (그렇지만 여전히 많이 단순화한)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서 피케티 이론과 그에 대한 반론들을 살펴보자. 

< 혜리와 민아의 세계로 본 피케티의 이론 >

먼저 시리즈글 4에 등장했던 스토리를 다시 써보자. 이상한 부분은 없는 지 생각해 보면서 찬찬히 읽어 보시기 바란다.

자본가 혜리의 재산은 1억원, 노동자 민아는 무일푼이다. 혜리의 재산은 5천만원 짜리 상가와 3천만원의 현금, 2천만원의 최신 냉장고와 닭 튀김기로 이루어져 있다. 민아는 이 1억원을 모두 빌려서 치킨집을 연다. 임대료와 이자는 연리 10%다. 즉, 자본의 수익률은 10%(r = 0.1)다.    

민아는 1년 동안 '뼈빠지게' 닭을 튀겨서 다른 비용 제하고 2천만원을 벌었다(부가가치 = 2천만원). 그 중 1천만원은 임대료와 이자로 혜리에게 주고 자신은 1천만원을 가져간다 (비현실적으로 단순화된 경제이므로 닭은 어디서 왔는지, 치킨은 누가 다 사먹는 지, 글쓴이가 왜 혜리만 편애하는 지 등의 질문은 하지 말 것). 

등장조차 하지 못한 두 사람도 있다 (사진출처: 스포탈코리아)

이제 혜리가 자신의 수입 1천만원을 고스란히 저축한다고 해보자 (아무것도 먹지도 쓰지도 않고 숨만 쉬면서!). 그럼 연말 기준으로 혜리의 자본은 1억 1천만원으로 늘어난다. 다음 해에 혜리는 자신의 1억 1천만원을 다시 민아에게 10% 이자율로 빌려준다 (민아가 왜 그걸 다 빌려야만 하는 지는 무시한다). 그러면 혜리는 내년에는 1천1백만원을 벌 수 있다. 즉, 내년에 자본이 가져가는 몫은 1천 1백만원이다. 

만일 노동의 몫도 1천 1백만원이 되려면 (자본과 노동소득 간의 비율을 유지하려면) 민아는 내년에 얼마를 벌어야 할까? 당근 2천 2백만원이다. 부가가치 증가율(성장률 g)이 10%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r=10%일 때 g도 10%가 되어야 두 사람이 같은 비율의 몫을 가져간다. r=g일 때 자본과 노동의 몫이 일정하므로 r>g가 되면 자본의 몫이 점차 커지고, 혜리와 민아 사이의 소득불평등도 커진다. 

그럴듯한가? 자 이제부터 반론을 시작해 보자. 안전벨트를 매고 따라와 주시기 바란다. 

반론 1 (자본가치와 수익률 개념을 너무 쉽게 봤다)

피케티의 '자본'은 토지와 주택, 금융자본, 공장/시설/기계/특허 등을 '시장가격'으로 나타낸 것이다. 위의 스토리에서는 마치 시장가격(1억원)은 정해져 있고, 그를 바탕으로 수익을 얻는 것처럼 되어 있다. 실은 그 반대다. 자본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즉, 민아가 치킨집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어야) 비로소 그에 맞춰 자본의 시장가격도 정해진다. 피케티가 예로 든 (어쨌든 죽지 않으려면 농사할 땅이 필요한) 농경사회와는 달리, 치킨을 사먹는 사람이 없으면 냉장고나 튀김기나 다 무용지물이다(시장가격이 폭락한다). 신도시로 주민들이 이사가서 동네가 쇠락했다면 상가 가격도 폭락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특정 시점의 자본의 시장가치로 부의 불평등 확대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한 가지 예로 들어보자. 피케티(2011년 논문, 링크)의 추정에 따르면 프랑스의 K/Y는 1910~1920년의 단 10년 사이에 700%에서 300%대로 폭락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문일까? 피케티에 따르면 물리적 파괴로 인한 감소분은 전체의 10% 정도밖에 안됐다. 그보다는 인플레로 인한 명목자산가치 하락, 부동산 가격 폭락, 주가하락 등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피케티의 계산 값에 의하면 그렇게 폭락한 K/Y 비율은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 (묘한 것은 대공황이나 2차대전은 그 정도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한편, David Weil (2014, 링크)은 시장가격을 이용한 피케티의 추정치가 자본의 생산성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건 기술적인 부분이라 넘어가더라도 더 중요한 비판도 있다.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나 연금이나 복지 혜택처럼 이전되는 부(transfer wealth)는 시장가치로 평가되지 않기 때문에 피케티의 자본추정에서 아예 빠진다는 것이다. 이런 자본들은 농경사회에서는 미미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피케티의 이론이 적용되지도 않고, 실증분석에서도 빠진다. 

기술적 관점에서의 추가적 문제 (이 부분은 건너 뛰셔도 좋습니다) 

자본소유에 따른 불평등을 판단하는 출발점은 자본의 수익률이 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피케티가 사용한 '역사적 실증' 방법은 현실적 이유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r을 추정했다. 방식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통계의 정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이다. 피케티는 무려 서기 0년에서 2100년까지의 글로벌 자본수익률 r을 추정했다 (책의 도표10.9(p.424), 도표 10.10(p.426) 참조). 이 r은 어떻게 추정했을까? 피케티에 따르면 1770~2010년 영국과 프랑스의 추정치를 이용했다고 한다. 영국과 프랑스로 전세계를 퉁친 것도 좀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자. 영국과 프랑스의 r은 어떻게 계산했을까? 직접 구한 건 아니고 민간이 소유한 wealth (K), 국민소득(Y), 자본수익 비율(alpha) 등을 추정해서 간접적으로 계산했다 (자본수익비율(alpha) = rK/Y 이므로 이를 K/Y로 나누면 r을 추정 가능하다) 

문제는 이 개념들이 다 최근에야 생긴 것들이라는 점이다. 국민소득 개념은 1934년에 Kuznets가 개발했다. 자본스톡 추계를 할 수 있는 수준의 국부통계를 내기 시작한 건 더 뒤의 일이다. 프랑스의 경우 국민계정 통계는 1949년부터 수집되었고, 국부통계는 1970년부터 제대로 추계되었다. 그 전의 자료들은 여러 방법으로 추정했지만 정확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피케티는 추가적 증거로 문헌과 발자크나 제인 오스틴 소설에 언급되는 국채이자율을 든다 (p.249~250). 내 반응은 '글쎄올시다'다. 구한말(1905년)의 최저이율이 10개월에 20%였다는 사실을 아는가?(링크) 대부분의 나라와 역사에서 이자율은 이보다 훨씬 높았다. 그렇다고 자본가들이 다 떼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대부기회도 적고 위험도 컸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의 이자율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반론 2 (부동산의 가격변화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다)

자본에 '토지와 주택' 이 포함된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피케티의 이론이 타당하려면 토지와 주택가격이 임대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임대료는 실제 주거의 가치에 비례한다. 하지만, 주택가격은 거기에다 미래 가격에 대한 '기대'와 내 집 소유에 대한 선호도 등을 덧붙여서 결정된다. 한국에서 전세제도가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집값이 계속 상승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집값 상승이 거의 없는(사실상 하락하는) 시기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엔 또 폭등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에 기대감이 지속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랬더니 전세가와 집값의 차이도 없어지고 있다. 

토지와 주택을 시장가격으로 측정하는 것의 맹점은 이들의 가격이 '틀릴 수도 있는' 예측이나 버블, 유행 등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피케티 이론에 맞게 토지와 주택의 가치를 측정하려면 실제 임대료를 바탕으로 자본가치를 역산하는 것이 더 맞다.  

피케티가 측정한 자본의 상당부분은 19세기 까지는 '농경지', 20세기 이후는 '주택'이다. 그리고, 이들이 K/Y의 비율이 U자형으로 변화해 온 이유의 대부분을 설명한다. 아래 그림은 Bonnet et al. (2014, 링크)에 제시된 프랑스의 자본구성 추이다(피케티 책의 [도표 3.2]를 표시순서만 바꿔 그렸음):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K/Y의 변화가 U자를 띄었던 대표적인 나라다. 보다시피 1910년 이전에는 K에서 농경지(Agricultural Land)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고, K/Y의 급락에도 그 영향이 (추가로 식민지를 잃어서 net foreign capital이 줄어든) 부분이 컸다. 반면, 1970년대 이후의 급상승은 주택가치(Housing)의 상승이 거의 대부분을 설명한다.     

Bonnet et al. (2014)은 부동산의 시장가격 대신에 1950년 이후의 임대료 추이를 이용해서 Housing 자본의 규모를 다시 추정해 보았다.  이를 이용해서 다시 그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300%에서 600%까지 급상승 했던 K/Y의 비율은 400~450% 선에서 안정추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변화했다. 왜 그럴까? 프랑스의 집값이 상승 추세였던(특히 2000년대) 것에 반해 임대료는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반면, 독일은 거꾸로 1990년대 이후 임대료에 비해 집값이 하락하였다 (아마도 이는 통일 등 독일 특유의 상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집값의 변화는 그 자체로 불평등의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집값이 급상승하던 시기에 빚을 져서라도 한 채 마련한 사람과, 어리버리하다가 그냥 넘긴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80년대 초 신개발 지역에 불과했던 강남에 살던 나의 친구들은 언제 집을 팔고 다른 데로 이사를 갔느냐에 따라서 부의 수준이 결정되었다 (어느 집안이나 이런 '아뿔사' 스토리 하나 쯤은 다 가지고 있다).


 부동산
은 역시 중요하다 (사진출처: 링크)

하지만, 이건 피케티 식 장기동학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자본소유자 중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나온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거나 정체하는 시기에는 집 가진 사람이 손해를 본다. 피케티의 이론은 어떤 형태든 자본소유자가 승자가 되고 집중도 심화된다는 것이다. 

반론3 (숨만 쉬면서 사는 사람은 없다)

혜리(자본가)도 소비를 하고, 민아(노동자)도 소비를 한다. 혜리가 자신의 수입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심지어 원래 가진 1억원까지 헐어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반면, 민아가 자신이 번 돈을 저축해서 자본을 형성할 가능성은 없을까? 

위의 예에서 혜리는 자기 몫인 1천만원을 고스란히 저축하고, 민아는 1천만원을 모두 소비한다. 그런데, 만일 그 반대라면 어떨까? 다음 해 혜리의 자본은 그대로 1억원이지만 민아의 자본은 무일푼에서 1천만원으로 늘어난다. 성장률이 동일하다면 소득 2천 2백만원 중에서 혜리의 몫은 1천만원 그대로이고, 민아의 몫은 1천 2백만원으로 늘어난다(!!). 

Debraj Ray(2014, 링크)의 비판은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다. r>g는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가든 노동자든 저축을 더 하는 쪽이 부를 축적한다. 피케티의 이론은 자본가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저축하기에 좋다는 '느슨한' 논리에 기반한다. 재벌이면 몰라도 자본 소유자 전체에 통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벌조차도 펑펑 써대기 시작하면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혹시 내가 든 예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 아닐까? 그렇지 않다. 전에 소개한 Acemoglu and Robinson(2014, 링크, Appendix 참조)은 피케티가 제도를 무시했다는 비판만 하지 않았다. 이들은 성장이론을 동원해서 훨씬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피케티 모형도 만들어 보았다. 그 결과 r>g 만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더 전제되어야 한다. 바로 저축성향이 1이라는 것과 (숨만 쉬고 저축) r의 변화율이 0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혜리가 뭔가 소비를 하면서도 부를 축적하려면 r>g 만으로는 안되고, r>>g여야 한다. 갭이 크면 클수록 소비도 가능하다. 

Mankiw(2014, 링크)에 따르면 이론 및 실증연구 결과 상 r 중 소비되는 부분은 3%p 정도라고 한다. 거기다 자본이득세나 상속세처럼 이리저리 세금으로 떼가는 부분이(미국 기준) 또 3%p 정도 된다 (Mankiw는 부자들의 탁월한 절세능력을 감안해서 1%p는 깎아 줬다. 인심쓴다). 거기다 먹여살릴 자손이 늘어나는 효과도 2%p 정도로 계산했다 (이건희가 재산을 나눠 줄 자식은 3명이다. 자식이 1명일 수도 있지만 여러 명일 수도 있다). 결국, 피케티 식으로 자본이 자기증식을 통해 대를 이어가며 축적되려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7%p 이상 안정적으로 높아 줘야 한다. 만일 성장률이 2% 대라면 자본 수익률이 9% 이상은 되어야 자본의 자기증식을 통한 축적이 이루어진다는 소리다. 이는 비현실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피케티가 제시한 5%를 훌쩍 넘기는 수준이다 (주: Mankiw 논리의 어려운 이론모형 버전은 Charles Jones (2014, 링크, p.9~10)에 제시되어 있다)

*추가내용: 처음 이 글을 썼을 때는 빼먹은 부분인데. 피케티가 측정한 자본의 상당부분이 부동산이라는 사실은 여기서도 관련이 있다. 부동산을 자본이라고 하면 이의 수익률은 '임대료'다. 그런데 부동산 중 상당부분은 자가소유 주택이다. 자기 집에 임대료를 내는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사실 이들도 임대료를 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한테 빌려줬다면 벌 수 있었던 임대료를 얻지 못하니까 경제학적으로 '기회비용'에 해당한다). 이걸 귀속임대료(imputed rent)라고도 부르는데, 결국 자본의 수익 중 스스로에게 지출, 즉 소비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의 대부분이 부동산이고, 이의 수익 중 상당부분이 귀속임대료로 소비된다면 피케티의 이론이 적용되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 분 쯤 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반론4 (자본의 노후화는 어떻게 메꿀건가?)

혜리와 민아의 스토리에는 감가상각이 없다. 단순화해서 그렇지만 자본이 개입된 모형에서 감가상각이 빠지면 섭섭하다. 감가상각은 시간이 갈수록 자본의 가치가 하락하는 부분이다. 자본이 자기증식을 하려면 일단 감가상각되는 부분부터 메꾸고 시작해야 한다. 물론 토지는 감가상각이 되지 않는다. 닳아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농경사회와 달리 현대의 국부 중 토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다. 나머지 건물, 기계, 시설, 특허에 이르기까지 감가상각 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현금은 괜찮지 않냐고? 현금은 구매력을 표시한 종이쪽지(또는 ATM 화면의 숫자)에 불과하다. 마늘밭에 묻어 두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경제 내의 생산수단과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혜리의 현금은 원래 은행에 예금되어 있었다고 해보자. 은행은 이 돈을 이미 누구에겐가 빌려주어 생산수단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혜리가 민아에게 빌려 준 현금은 하나의 생산수단에서 다른 생산수단으로 손바꿈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마늘밭에 묻는다면 물론 인플레를 통한 가치하락이 기다리고 있다.    
 
피케티도 바보가 아니므로 감가상각을 잊지는 않았다. 그의 이론에서 저축이나 소득은 감가상각분을 제외한 순가치(net value)로 정의되어 있다. 문제는 그가 자본의 장기동학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감가상각의 역할을 무시했거나 잊어버린 듯 하다는 것이다. Krusell and Smith (2014, 링크)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피케티가 주장한 것처럼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K/Y는 계속 높아지려면 종국에는 국민소득의 전부를 저축하는 지경이 돼야 함을 보였다. 혜리만 숨만쉬고 저축하는 게 아니라 경제전체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성장률이 둔화되더라도 K/Y가 적정 수준에서 안정된다.    

반론5 (민아가 늘어난 자본을 왜 굳이 빌려야 하나?) 

우리의 단순화된 스토리에서 민아는 혜리가 증식시킨 자본 1천만원을 같은 이자율 10%에 추가로 빌린다. 이 상황은 현실적이지 않다. 물론 민아가 치킨집을 더 예쁘게 꾸미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혜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혜리: 민아 언니, 내 돈 1천만원만 더 빌려가라. 
민아: 싫어, 필요 없거든. 
혜리: 싸게 해 줄테니 그냥 빌려가라 쫌.  
민아: 얼마나 싸게 해 줄 건데? 그 김에 원래 빌린 돈 이자도 좀 낮춰주면 안돼? 

개인들 간의 상황이라면 혜리가 그냥 '퉤' 하고나서 딴 데 빌려주는 것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 전체로는 얘기가 다르다. 경제가 급속성장하지 않는 한 (급속성장하면 어차피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자본의 공급량이 커지면 수익률 r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얼마나?'이다. 피케티의 생각은 r이 얼마 떨어지지 않아도 늘어나는 자본을 다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기술이 늘어난 자본의 용도를 원활하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아는 닭을 직접 튀기는 대신 최신 로봇 팔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자본의 크기가 늘어나도 수익률이 별로 떨어지지 않으므로 피케티의 이론은 유지될 수 있다. 반대로 수익률이 많이 하락한다면 자본의 몫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이 내용을 경제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21세기의 자본-노동 간 대체탄력성은 1보다 크다(p.266~267)'라는 피케티의 주장이 된다. 피케티는 역사적으로 이 값이 1.3~1.6으로 추정된다고 얘기한다. 그랬더니 경제학자들이 대거 들고 일어났다. Larry Summers (링크)는 "응? 님 뭔가 논문 잘못 읽으신 것 아님? 내가 본 바로는 대체탄력성이 거의 1 이하던데"라고 반응했다. Matt Rognlie (2014, 링크)는 47페이지 짜리 논문을 써서 이론/실증적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보수적 성향 Heritage 재단의 Dubay and Furth(2014, 링크)는 피케티가 제시한 수치를 gross개념으로 환산해서 기존의 다른 연구결과들과 비교하는 차트를 그렸다 (오해인지 모르지만 뭔가 고소해 하는 분위기가 전달된다). 그게 이 그림이다: 

보수주의자들에게 빌미거리를 제공하다니 분한 느낌이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결론을 내보자. 

오늘은 거의 피케티의 이론을 비판하는 내용 위주로 썼다. 피케티를 좋아하던 분들은 좀 기분이 나쁘셨을 것이다. "이 자식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군"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사실 균형을 잡기 위해 피케티를 옹호하는 이론도 찾고 싶었는데 설득력 있는 것을 못 찾았다. 경제학계에서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9:1 정도로 비판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실증과 연결된 비판은 뺀 것이다). 심지어 피케티 열풍의 한 축인 Joe Stiglitz (링크) 조차도 최근 인터뷰에서 피케티의 이론은 적절치 않다고 인정했다. Krugman이 요즘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 

(나중에 추가: 여기서는 피케티 이론에 대한 비판들 중 내 생각에 중요하다고 본 것들 위주로만 설명했다. 피케티 옹호론은 원래 소수이기도 하지만 같은 기준을 적용할 때 굳이 소개할 이유를 못 느꼈다. 그래도 하나도 개를 안 하려니 뭔가 찜찜하다. 피케티 옹호글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Steibaum(2014, 링크)이 있다. 무려 "피케티의 불평등이론과 비판들에 대한 백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Steibaum은 대체로 '주류경제학의 모형이 워낙 단순해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의 방향으로 주류경제학계의 비판을 재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길로 너무 나가다보면 "현실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 않냐? 그러니 불평등이 심화된다"와 같은 얘기가 되어버릴 우려가 있다)     
  
피케티 이론은 결함이 많지만 그는 원래 이론가가 아니니 실수할 수도 있다 (너무 세게 주장하고, 그걸로 엄청난 유명세를 타게 된 게 문제라면 문제다. 게다가 경제학자들을 까는 얘기도 곳곳에 썼으니...). 최소한 이런 식으로는 자본이 자기증식을 통해 불평등을 심화시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 

그래도 찜찜함은 남는다. 피케티가 왜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됐는 지 이유는 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최근 동료 Zucman과 함께 "Capital is Back"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간했다. 그가 붙인 제목대로 지난 30년 간은 그 전과는 달리 노동에 비해 자본이 우세를 점하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1%에 대한 집중이나 불평등도 늘어나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피케티의 설명이 틀렸다면 다른 설명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내용을 다뤄 보겠다.  

오늘의 요약

(1) 피케티는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으면 자본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부(wealth)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본의 몫이 더 커진다고 보았다. 역사적으로도 20세기의 수십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r>g였고, 앞으로는 점차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기 때문에 자본의 힘과 불평등이 더 커지는 음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보았다. 

(2) 하지만, 이 이론은 경제학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농경사회와 달리 현대의 자본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 요소들을 무시한 면이 크기 때문이다. 자본의 가치와 수익률, 인적자본, 부동산 가격 변동요인, 소비와 감가상각, 자본과 노동의 대체관계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거나 잘못 반영되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3) 종합해 보면 피케티의 이론 자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의 힘과 불평등이 더 커지는 미래는 오지 않을 거라고 안심할 수는 없고, 다른 이론들도 점검해 봐야 한다. 



핑백

  • Gapfiller's Depository : < 불평등에 관하여 10-2: 노동의 몫 감소의 원인 > 2015-04-12 15:13:24 #

    ... 찾아 보도록 하자. 지금까지 지목된 바로는 용의자는 크게 넷이다. 피케티 이론(r&gt;g)까지 포함시키면 다섯이라고 해야 겠다. 하지만, 피케티 이론은 시리즈 9번 글(링크)에서 이미 충분히 검토했고, 적어도 내 의견으로는 용의선상에서 배제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1. 첫 번째 용의자: 기술의 발전 첫 번째 용의자 ... more

  • Gapfiller's Depository : <불평등에 관하여 13: 요약 및 정책을 위한 고려사항들 > 2015-10-07 18:01:06 #

    ... 비판 중의 하나는 그가 자본가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근거로 사용한 K/Y (국민소득 대비 자본비율)의 증가추세가 사실 대부분 부동산 가격의 변화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었다(예전 글 링크 참조). 특히 경제기조가 크게 바뀌고 있는 우리의 경우 부동산 시장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가 미래의 상황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때의 목표는 부동산 가 ... more

덧글

  • 지나가다 2017/08/07 03:30 # 삭제 답글

    헤헤 저 책 읽으면서 왜 감가상각이 있을텐데 순저축율을 상수로 둘수가 있는거지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서 기분이 좋네요
  • 호우 2018/05/23 01:04 # 삭제 답글

    예전 글이라 보실지 모르겠지만...

    감가상각 관련해서 이해가 안되는게 있는데요. 말씀하신 사례 말고 일반적인 투자 대상인 기업의 경우, 재무재표에서 감각상각을 다 계산하고 남은 이익으로 이익률을 내지 않나요? 그게 기업의 이익률이 장기적으로 주주의 수익률에 수렴할테고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