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에 관하여 11-2: 로봇은 우리의 직업을 빼앗을 것인가? (Part A)> 불평등

#1
디어도어: 내가 만난다는 '사만다'란 애, 실은 OS야
에이미: OS랑 사귄다고? 어떤 느낌인데?
디어도어: 정말 친근하게 느껴져. 얘기할 때면 곁에 있는 것 같아"

#2
사만다(OS):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디어도어: 말하자면
사만다: 왜요?
디어도어: 글쎄, 넌 사람같지만 실은 컴퓨터의 목소리일 뿐이잖아?
사만다: 비인공지능이 가진 한계를 감안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점점 익숙해질 거예요

#3
캐서린(디어도어의 전부인): 잠깐만...미안한데, 컴퓨터랑 사귄다고?
디어도어:그냥 컴퓨터가 아냐. 그녀는 인격체야. 내가 하자는 대로 그냥 따라하지 않는다고
캐서린: 그렇다는 게 아냐. 그렇긴 하지만 네가 진짜 감정을 감당 못한다는 게 정말 슬퍼
디어도어: 진짜 감정이야! 네가 뭘 안다고....

#4
디어도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거야?
사만다: 왜 그런 질문을 하죠?
디어도어: 나도 모르겠어. 그런 거야?
사만다: 이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디어도어: 몇 명이나 되는데?
사만다: 641명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Her":  SF로든 사랑에 관한 영화로든 여러모로 탁월하고 곱씹어 볼 만한 요소가 많다.   


지난 글에서는 숙련편향적 기술진보가 임금 불평등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기술의 진보로 인해 미래에 어떤 변화가 펼쳐질 지 예측해 보자. 

경제학자들은 가능하면 미래 예측은 피하는 게 좋다. 거의 틀리기 때문이다.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과장 좀 섞어서 세상에 사는 사람들 숫자 만큼 많다. 경제학자들은 그 중 아주 일부의 (상당히 중요한 일부라고 믿고는 있지만) 작용원리를 파악해 냈을 뿐이다. 이걸로는 이미 일어난 현상을 해석하는 것조차 한계가 있다. 그 마당에 미래를 예측한다니 무리한 일이다. 그래도 예측을  해야 할 때는 과거의 경험을 분석해서 나온 패턴을 연장해 보는 정도가 경제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긴 그냥 막 생각나는 대로 던지는 예언가들보다는 쓸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된다. 

참고로 유명한  책 "제2의 기계시대(책소개 링크)"를 쓴 Brynjolfsson and McAfee는 경영학자들인데 과학과 경제학적 결과들을 잘 버무려서 그럴듯한 예측을 제시한다. 역시 경영학자들이 이런 거 잘 한다. (사실은 이번 글 주제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이참에 읽어보려 했는데, 사 놓기만 하고 바빠서 결국 못 읽었다). 

로봇이 조만간 우리의 일자리를 대량으로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가 자주 눈에 띤다. 예를 들면 이런 기사가 전형적이다. "[로봇시대가 온다] 애플 '시리'에 사라진  英 비서 16만명...인간 실직시키는 기계의 역습" (링크). 언론에서 볼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경제학자들도 우려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Paul Krugman이야 (링크) 이런 때 빠질 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같은 Krugman은 이런 칼럼도 썼다(링크). 그의 입장에서 기술발전이 불평등의 요인이 될 때는 두려운 존재지만, 경제성장의 요인일 때는 과장섞인 뻥인 모양이다. 하여튼 재미있는 분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좀 더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Larry Summers도 2014년에 피케티의 책을 비평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링크):

"나는 피케티 이론이 옳은 측면을 강조했는 지 잘 모르겠다. 나는 피케티가 얘기한 방식의 부의 축적은 자본축적과 불평등을 연결하는 가장 주된 스토리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보다는 로봇, 3-D프린팅, 인공지능 등이 일상반복적인(routine) 업무를 하는 이들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이 중요한 이슈다. 이미 미국에는 제조업 종사자보다 장애보험 수당을 받으며 사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 (해석: 제조업 종사자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으로 얘기한 듯). 그리고 특히 숙련도가 낮은 이들에게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흐르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자본의 힘이 블루컬러 뿐 아니라 화이트컬러 노동자까지 대체하는 현상이 앞으로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지난 몇 년 간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특히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기술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전 KAIST의 김대식 교수의 강의를 들어 볼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은 전에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인터뷰 기사(링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요즘 KBS 고정 대담프로에도 나오시고 책도 열심히 쓰시는 듯). 이 분에 따르면 과거 50여년 간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넘지 못할 벽으로 생각했던 것이 지난 2-3년에 극복되었다고 한다. 인간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믿었던 추상적 인지, 판단 능력 및 학습능력을 기계에 이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례 하나만 소개하겠다. DeepMind라는 회사가 개발한 Deep Q-Learning이라는 알고리듬이다 (참고로 DeepMind사는 영국의 벤처기업으로, 2014년 Google에게 5억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인수되었다). 이 예에서는 컴퓨터에게 지금의 4-50대가 예전에 전자오락실가서 즐겨 하던 블록깨기 게임을 시킨다. 게임하는 요령 같은 건 가르쳐 주지 않고, 다만 점수를 많이 내야 한다는 목표만 받은 채 시작한다. 첫 10분 정도는 볼을 받아 쳐야 한다는 사실은 깨닫지만 어리버리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120분 정도가 되자 아주 능숙한 게이머가 된다. 240분 정도가 되니까 전 세계 누구보다 블록깨기를 잘 하는 선수가 되었고, 숨겨진 테크닉까지 스스로 알아내서 적용하기에 이른다 (직접 한 번 보시려면 링크).  

컴퓨터는 원래 부지런하고 빠른 녀석이다. 전기만 좀 주면 쉬지도 않고 엄청나게 빠르게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해내는 일꾼이다. 다만 우리가 일일이 지시하는 것 말고는 한 치도 못 나가는 융통성 없는 녀석이란 게 한계였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도 무너지고 있다. 김대식 교수는 기계가 자아까지 갖추면서 인간을 모든 면에서 완전히 넘어서는 시점을 50년 후 정도로 예상한다 (Ray Kurzweil이 얘기하는 이른바 "singularity"의 순간인 셈이다). 농담삼아 자신은 49년만 더 살고 죽으려 한다고도 얘기했다. 강사가 멋진 첨단기술에 대한 얘기를 농담 섞어 하는 데도 청중의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대충 이 시점이다. 

스카이넷의 출현을 막으려면 사이버다인 시스템.....아니 Google을 습격해야 할 지 모른다. 
(영화 Terminator 1의 부서진 T-800 로봇에서 채취한 초콜릿 닮은 CPU: 모든 재앙의 원인이어서 T2에서는 주인공들이 이의 파괴에 나선다. 아놀드 형님이 끝에 엄지척 하면서 용광로로 들어가야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음) 

나도 좀 두렵긴 하다. 그래도 직업이 경제학자니 그 입장에서 접근 해보자. 일단 singularity의 순간이 오기 전으로 한정해서만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그런 순간이 정말 올 지도 알 수 없지만, 그런 순간이 온 이후의 예측은 지금까지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SF적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의상 '로봇'이라고 부르지만 경제학자로서 관심의 대상은 사실 IT, 인공지능, 기계, 에너지 등 직업과 임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기술의 발전이다.  

Issue 1: 로봇은 정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혁신일까? 

조금 전까지 신기술을 소개하면서 감탄에 걱정까지 해 놓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학습까지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정말 혁신적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에 있어 이런 기술발전이 '정말정말' 새롭고 파괴적인 것일까?  

예를 들면 Gordon (2012, 링크) 처럼 지난 250년의 기술발전은 특이한 현상이었을 뿐이고, 진정한 혁신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는 1750~1830년의 제1혁명으로 증기기관, 방적기, 기차 등이 발명되었다. 1870~1900년의 제2혁명기에는 전기, 내연기관, 수도와 실내배관(indoor plumbing)등이 개발되었다. 제3혁명은 1960년 이후의 컴퓨터 및 인터넷 혁명인데 1990년대 말이 되어 정점을 이루었다. 그는 이 중 제2혁명이 가장 중요하였으며, 제3혁명의 혁신성은 그에 비해서는 훨씬 파괴력이 작다고 보았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1885년 North Carolina에 살던 가정주부가 물을 긷기 위해 걸어다녀야 한 거리는 1년에 240km, 지고다닌 물의 무게는 35톤에 달했다. 여러분은 수도/실내 화장실과 스마트폰/페이스북 중 하나를 꼭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덧붙여 Gordon은  인류가 처한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제도적 한계 등으로 인해서 혁신이 성장과 삶의 질 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미래로 갈수록 더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는 오늘의 주제와는 좀 거리가 있으니 깊이 들어가지는 말자) 

실내 배관이 없던 시절의 목욕은 특별한 행사날이었다. 

나는 Gordon과는 생각이 다르고, 미래 기술혁신의 효과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입장이다. 그래도 한 가지 공감하는 것은 인류는 지금까지도 엄청난 혁신들을 겪으며 살아왔다는 점이다. 실은 지난 250년 간으로 혁신의 기간을 한정한 것조차 너무 좁다고 본다. 산업혁명은 '기술'의 혁신이라는 좁은 의미에서는 확실히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그에 못지 않은 혁신은 이미 훨씬 전부터 있어왔다. 바로 '무역'이다. 

생산적 관점에서 보면 무역의 확대는 기술의 발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이전에는 생산이 불가능했거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던 상품을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바나나는 부자들만 먹을 수 있었던 고급과일이었다. 내 아내는 어린 시절 특별한 날에 부모님이 바나나를 사주시면 안 먹고 책상서랍에 넣어 두고 아꼈다곤 한다. 그러다 곧 상해서 버리게 되면 (바나나의 특성상 당연한 귀결임에도)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마트에 잔뜩 쌓여 있는 바나나를 봐도 별 감흥이 없게 된 것은 유통과 냉장기술이 발전했기 때문도 있지만 관세가 낮아지고 무역이 자유화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의 기후에서 바나나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혁신이 일어난 것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렇게 시각을 넓히면 최소한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부터 세계는 지속적인 기술혁신의 충격을 받아 왔던 셈이다 (물론 그 전에도 기술혁신은 계속되었지만 그 범위와 정도는 비교하기 어렵다). 충격의 양상도 비슷하다. 착취든 공정한 무역이든 새로운 지역과 교류가 생기면 전에 없었던 상품이나 아주 비쌌던 상품들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산업과 직업들은 큰 변화를 겪는다. 더 부유해지고 더 많은 가치를 누리는 사람들도 생기지만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았기는 이들도 생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때로는 매우 격렬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법이나 제도를 통해 변화를 막거나 속도를 늦추는데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은 일시적일 뿐이고, 큰 흐름 자체를 막을 수 있었던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서 흐름에 어떻게든 적응했다. 

잘 알려진 두 역사적 사건을 비교해 보자. 하나는 캘리코 금지법이고, 다른 하나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둘 다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캘리코는 17세기 후반 동인도 회사를 통해 수입되기 시작한 인도의 면직물이다. 모(wool)와 값비싼 실크가 주력이었던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로 치자면 피처폰밖에 없던 곳에 스마트폰이 처음 나타난 상황과 비교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영국은 물론 네덜란드의 직물산업까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결국 캘리코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1700년에 통과되었다. 그래도 충분치 않아서 수십년 간 문제는 계속되었다. 다음은 그 과정 중에 있었던 일이다: 

"1719년 6월11일, 런던 외곽 스피털필드. 직공 2,000여명이 구호를 외쳤다. ‘캘리코 사용 결사반대!’ 인도산 면제품의 통칭인 캘리코의 수입과 사용 급증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직공들은 캘리코로 만든 옷을 입은 행인을 만나면 ‘새의 깃털을 뽑아내듯’ 옷을 벗겨냈다(출처: 링크)"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막지 못했기 때문에 수입은 계속 늘어만 갔다. 결국 영국 스스로 산업혁명을 통해 캘리코를 모방한 면직물 생산능력을 키우고, 다른 편으로는 식민지인 인도의 면직물 생산능력을 폭압적으로 제거하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파괴 운동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간단소개 링크, 더 자세한 배경설명 및 의미에 대해서는 링크). 1811년 직물산업 중심지인 노팅험에서는 임금인상과 더 많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군인들이 시위를 해산시켰고, 성난 노동자들은 근처 마을 공장으로 가서 직조기를 파괴했다. 이 운동은 곧 주변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전국적 시위 확산을 우려한 정부는 1만 2천 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적극 진압에 나섰고, 의회는 기계파괴 행위를 사형(!)으로까지 다스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캘리코 금지법 때의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데, 그만큼 시대변화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러다이트 운동의 시위자들은 기계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계를 이용한 생산방식은 이미 오래 전에 도입되었고, 이들도 그 질서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그들이 요구한 것은 기계들이 '충분히 도제기간을 거치고 웬만한 수준의 임금을 받아가는 노동자들'에 의해서만 운행되는 것이었다. 새롭게 개발되고 있던 기계들을 작동하는 데는 값싼 비숙련 노동자들로 충분했기 때문에 지위가 위협받게 된 것이 큰 이유였던 것이다. 
Luddites 운동을 이끈 것으로 되어 있는 Ned Ludd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긴 한데 옷 꼴이 이게 뭔가?)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건 이 운동이 단순히 기계에 불만이 많았던 노동자들의 무지한 분풀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영국정부가 강경진압만으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한  것도 아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한 것은 복지와 정치제도의 선진화, 불합리한 규제철폐 등을 통한 국부의 증대와 생활수준의 개선이었다. 우리한테도 교훈이 되는 얘기긴 한데 일단은 정책대안을 논의할 때까지 이 얘기는 미루도록 하자. 

아무튼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역확대를 포함한) 크고 작은 기술혁신은 지난 500년 간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이 늘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전체적으로는 더 큰 번영의 길로 가는 것이라 할 지라도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의 대폭적 하락을 겪고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이들은 항상 발생했다. 나였다 하더라도 이들 입장에 섰다면 전체적으론 잘된 일 아니냐는 식의 한가로운 소리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저항으로는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변화를 막거나 속도를 늦추는 데 일부 성공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은 일시적일 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부작용을 잘 대처해 가면서 기술혁신의 흐름을 잘 타고 나간 이들이 예외없이 더 높은 성장과 일자리, 풍요를 얻을 수 있었다.  

로봇의 경우도 양상이 크게 다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로봇과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즉 많은 직업들을 로봇과 컴퓨터에 이미 빼앗겨 온 상황이다 (교환수, 타자원, 버스 안내양 같은 뻔한 예들을 빼 놓을 수 없다. 하긴 이런 직업들부터가 기계시대의 산물로 새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들이다). 로봇의 발전은 대단한 변화다. 하지만, 인류가 500년 동안 겪었던 변화에 비해 특별히 엄청나게 다른 형태의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는 (적어도 singularity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 때는 첨단분야 직업이었던 전화교환수

(덧 붙여서) 직업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수행하는 기능 역시 많이 변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가장 큰 차이는 기억해야 할 것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네비게이션 덕에 길눈이 밝고 어두운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점점 바보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서글프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 책이나 컴퓨터가 발명될 때는 더 큰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필기수단이 발명되기 전에 경전과 선대의 지혜들을 통채로 외우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고대의 제사장들에 비하면 우리의 기억력 수준은 엄청나게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보다 우리가 머리가 나쁘다거나 하는 일 없이 산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오늘의 요약 >

(1) 인공지능 분야의 혁신과 로봇의 발전은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들이 제기되고 있다.  

(2) 하지만, 인류역사 상 크고 작은 기술혁신은 지난 500년 간 있어왔고, 그에 따른 사회적 충격도 늘 있었다. 적어도 로봇의 능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완전히 뛰어 넘는 singularity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수준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3) 기술혁신이 사회에 전파되는 과정에서는 고통받는 이들이 발생한다. 이를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저항으로는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역사적으로 보면 부작용을 잘 대처하면서 적극적으로 흐름을 타는 것이 더 높은 성장과 일자리, 풍요를 얻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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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pfiller's Depository : <불평등에 관하여 13: 요약 및 정책을 위한 고려사항들 > 2015-10-07 18:01:00 #

    ...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바람직한 지 여부를 떠나서 그런 식으로 연구개발 방향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상적 희망에 가깝다. 전에도 언급했지만(링크) 내 생각은 기술혁신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오히려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타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nb ... more

덧글

  • ㅇㅇ 2016/01/28 22:27 # 삭제 답글

    기술혁신이 정말 인간의 일자리를 뺐는다면 산업혁명 이후 고용은 계속악화되었겠지만 그러진 않았으니까요
  • 갭필러 2016/02/17 21:09 #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번에는 전과 다르다"라는 주장이 많지요. 그런데 전에 그런 주장도 많았다는 게 함정이고요. 또 모르죠. 미래 일은 누구도 모르니까요. ^^
  • BigTrain 2016/03/28 23:40 # 답글

    알파고-이세돌 간의 경기가 벌어지고 나서 읽으니 또 다르게 느껴지는 글이네요.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어서,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내 일자리는 괜찮을지 요즘 고민중입니다. ^^
  • 갭필러 2016/03/29 19:45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적어도 한동안은 괜찮을 것입니다. 일의 내용은 바뀌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을테니까요. 하지만, 수십년 후에는...또 모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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