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관하여 11-2 : 로봇은 우리의 직업을 빼앗을 것인가? (Part B)> 불평등

Part B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최근 회자되는 로봇 혁명 가능성이 대단하긴 하지만 (적어도 singularity point 전까지는) 지난 500년 간 인류가 겪어 온 기술혁신 역사의 방식을 크게 벗어날 것 같지은 않다는 내용을 썼다. 이번 글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직업과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예상해 보자. 


Issue 2: 기술발전이 직업변화에 미치는 영향과 로봇 

로봇과 컴퓨터가 발전할수록 많은 직업들이 없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로봇과 컴퓨터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면 뭣 때문에 그리 열심히 개발하겠는가?  Frey and Osborne (2013, 링크) 같은 이들은 현존하는 직업 702개의 직무내용을 분석한 후, 기술의 특성이나 발전방향을 감안할 때 이 중 무려 47%가 앞으로 10~20년 내에 컴퓨터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경제학자가 없어질 확률도 43%에 달한다 ㅠㅠ).   

이런 종류의 예측은 직업변화의 많은 요소들 중 일부만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애써 위안해 본다). 업무의 성격 상 컴퓨터의 위협을 더 받는 직업들이 어떤 것들인 지를 알려주는 의미는 있을 것이다.    

인류가 그동안 겪은 기술의 혁신은 많은 일자리를 없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일자리를 창출해 냈다. 뿐만 아니라 없어진 일자리에 비해서 새로 생긴 일자리는 전체적으로 보면 항상 더 좋고 더 많았다. 많은 이들이 기술진보로 인한 대량실업의 도래를 우려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컴퓨터 혁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64년 3월,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은 한 특별위원회가 작성한 "Triple Revolution"이라는 제목의 건의서를 받았다. 여기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관련내용은 Murnane and Levy (2013, 링크)에서 알게 됨, 위키피디아 링크도 참조). 

"새로운 생산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조직원리는 과거 산업시대가 농업시대와 달랐던 것처럼 지금의 산업시대와는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사이버국가(cybernation) 혁명은 컴퓨터와 자동화된 로봇의 결합으로 구현됩니다. 이는 인간의 노동력을 훨씬 적게 사용하면서도 거의 무한대의 생산능력을 갖는 시스템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사이버국가는 이미 스스로의 필요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 및 사회 체제를 재조직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나서 보고서는 당시의 실업률이 (60년대 기준으로) 과도하게 높았던 이유를 '기계의 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미국 GNP의 10%에 달하였던 당시의 국방 및 우주탐사 지출이 줄어들면 실업률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도 예측한다.  

참고로 이 특위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군나르 미르달), 물리학상 수상자 등 쟁쟁한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충 해 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예언과는 달리 국방 및 우주탐사 지출이 줄었음에도 미국의 일자리는 이후 50년 동안 7,400만 개 더 늘어났다.  

이런 역사가 있으니 경고하는 사람들이 나와도 시니컬하게 되기 쉽다. 물론 이 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  그럴 지도 모른다. 경험적 추론에는 늘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공룡이 멸망할 때 그들도 그렇게 될 줄 예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공룡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누구도 확언하기 어려운 일이니 의견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평가를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이 어떤 식으로 직업을 없애고 또 만드는 지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관련하여 Besen (2015, 링크)의 설명을 참고해 보자. 그는 미국에서 현금자동출납기(ATM)를 도입한 후에 은행의 고용이 어떻게 변화했는 지를 기술한다. 미국에서 ATM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지만, 본격적인 설치는 1990년대부터다. 요즘 세대들은 기억 못하겠지만 예전에는 모든 업무를 창구직원이 했었다. 입출금과 같은 간단한 업무라도 통장이 필요했고, 출금할 때는 도장도 있어야 했다. 번호표를 받고 신청서를 작성해서 순서를 기다렸는데, 손님이 많아서 늘 기다리곤 했다. 은행에는 왜 이렇게 볼 만한 잡지가 없냐고 불평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유학시절 미국 은행에 가보니 심지어 앉지도 못하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창구직원들은 일처리가 느려서 답답해 죽을 맛이더라). 상황이 이러니 ATM이 도입된 후에는 급속히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창구직원의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미국은 해고가 어렵지도 않으니 당연히 상당수의 창구직원이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라고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그림에서 보듯 창구직원의 고용은 크게 늘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90년대 중반 ATM의 설치가 급속히 늘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일까? Besen에 따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ATM은 은행지점을 개설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줄였는데, 이는 더 많은 지점의 개설로 이어졌다. 1988년에는 지점 하나당 20명 정도의 직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2004년에는 13명이면 되었다. ATM 덕에 기본적인 업무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새로운 지점을 개설해서 시장을 공략하는 데 부담을 덜 느끼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도시지역 은행지점의 숫자는 43% 늘었다. 둘째, 은행 창구직원들은 단순 입출금 업무에서 해방된 시간을 다른 업무에 쓸 수 있었다. 고객을 응대하거나 투자나 대출상담을 하는 데 시간을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도 이 쪽이 더 잘된 일이었다. 

ATM 도입의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기술발전의 영향에 대한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기술도입의 영향을 분석할 때 수요측면이 빠지면 안된다.  그림에서 1970년대에 창구직원의 고용이 먼저 빠르게 증가했음을 주목하자. 아마도 은행업이 성장하면서 지점확대 필요성이 커지고 인건비 지출도 증가했을 것이다. 은행의 적극적 ATM 도입은 독립적인 기술발전 덕이기도 하겠지만 늘어나는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수요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농담같은 얘기지만 중국에서는 (전시성 선전용 빼고는) 드론(drone)이 택배원을 대체하는 일 같은 건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땅은 넓고 배달직원의 인건비는 높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나 해당되는 얘기다. 

둘째, 기술의 수준은 제약조건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제약이 완화되었을 때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고용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ATM 이전에는 기본 입출금업무를 수행하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들었다. 이는 은행들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수익창출 기회를 추구하는 데 제약이 되었다. ATM이 도입되자  은행들은 고용을 줄이는 대신 제약을 극복하는 데 풀려난 자원을 활용했다. 이런 변화는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들 간의 경쟁과 적극적 대응이 없었다면 인건비만 줄이고 끝났을 수도 있다. 

셋째, 직업과 그와 연결되는 업무의 내용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1980년대만 해도 ATM과 창구직원은 서로 대체성이 높은 존재였다. 당시에는 ATM이 도입되면서 창구직원 고용증가세가 줄어들었는데, 이 때만 본다면 ATM은 창구직원을 대체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가 되자 ATM 도입이 폭발적으로 더 늘어났음에도 창구직원 고용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 때쯤에는 이미 창구직원의 업무가 많이 변화되었던 것이다. 

넷째, 위의 그림에서는 은행 내에서의 고용변화만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ATM을 생산하고 유지, 관리하는 산업과 직업들은 완전히 새로 생긴 일자리다. 이 역시 적지 않은 고용을 창출했을 것이다. 

이런 시사점들은 어떻게 미래에 대한 대비로 연결될까? 어쩐지 리스트 만들기 놀이하는 것 같지만 한 번 나열해 보자. 

첫째, 기술의 발전속도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인건비 절감에 대한 수요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지금 현재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거나, 사람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 그 중에서도 로봇과 컴퓨터가 상대적으로 잘 할 수 있는 일일수록 대체가 빨리 일어날 것이다. 3D(dirty, demanding, and dangerous) 직업이면서도 인건비가 높은 직업들이 최우선 대상이다. 3D라도 임금이 낮다면 당분간은 안전하다. 우리나라로 보면 배달원이나 택배원, 수리공 같은 직업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런 직업들도 안심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임금이 낮아도 다른 선진국에서 높다면 그에 대한 지속적인 기술개발 수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직업이 사라지는 일이 나타날 수 있다.   

둘째, 고용을 유지하려면 사람들이 원하고 있지만 아직은 제약조건 때문에 나타나지 못하는 사업들이 빨리 창출되는 게 중요하다. 아무래도 서비스업 쪽이 그럴 여지가 많다. 기존의 서비스에 불만이 많은 부분을 개선할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직업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게 뭐 그리 많이 남아 있겠냐 생각하실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지금은 시중에 차고 넘치는 커피 바리스타도 10여년 전만 해도 직업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나만 해도 나타나기만 하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서비스가 여럿 된다. 기술발전의 역사가 상류층만 즐기던 것이 보편화되어 온 것임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돈 많은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것들(예를 들면 퍼스널 쇼퍼, 개인 의상 코디네이터 등)이 일단 후보군이 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직업들이 활발히 창출될 수 있으려면 (뻔한 얘기지만) 쓸데 없는 규제가 없어야 하고, 경쟁이 활발해야 하고, 기업가 정신이 충만해야 한다. 

 Her의 주인공의 직업은 손편지 대신 써주는 사람이다. 미래에 정말 있음직한 직업이다.  

나타나기만 하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서비스가 꽤 된다고 말을 써놓고 나니 그게 뭔데?라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을 듯 하다. 별건 아니다. 바쁜 맞벌이 생활을 20년 하다보니 나나 집사람 둘 다 '좋은 아내'가 필요한 입장이다. 따뜻한 아침밥도 먹고 싶고, 냉장고의 유효기간 지난 식자재들 볼 때마다 불쾌하고, 옷장에 쌓여가는 옷들도 부담스럽다. 애가 어릴 때는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과 퇴근시간 사이의 단 몇 시간을 책임져 줄 사람도 절실히 필요했다 (애가 큰 이후엔 감시자 + 상담자가 필요해짐). 그 동안 이런 간극을 메우는 서비스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도 열심히 찾아서 시도해 봤다). 하지만 뭔가 미흡하거나, 너무 비싸거나, 아직은 수요가 부족한 이유 등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아직도 원하고 있다.    

셋째, 고용이 반드시 감소하지 않더라도 직무는 크게 변화한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이에 대한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특히 개인의 수준에서는 영영 적응을 하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고연령층일수록 이러한 부담은 더욱 크다. 그렇다고 해서 러다이트처럼 기계를 부수거나 새로운 능력을 가진 청년들의 진입을 막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기존의 인력들이 너무 심각한 길로 내몰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정도가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될 것이다.  


Issue 3: 숙련편향은 계속될 것인가? 

지난 글에서 살펴봤던 숙련편향적 기술진보(SBTC)에 대해서 상기해 보자. 내용은 이랬다: 1970년대 이후 고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해 왔다. 1990년대 이후에는 IT혁명이 일상적이고 표준화가 가능한 중간직종을 사라지게 하고있다. 그래서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와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만 늘어나는 '일자리의 양극화' 또는 중간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더 긴 역사를 살펴보면 늘 이런 식은 아니었다. Goldin and Katz (1998, 링크) 및 다른 역사가들에 따르면 20세기 이전의 기술진보는 반대로 숙련인력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러다이트 운동에서 투쟁에 나선 주체들은 '숙련된' 장인(artisan)들이었다. 이들의 불만은 기계 자체라기보다는 기계의 도입으로 자신들의 숙련에 대한 보상이 줄어드는 것이었다. 당시에 개발된 기계들은 생산공정을 여러 개의 단순하고 분업화된 것들로 나누었다. 숙련된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줄어드는 대신 비숙련 인력에 대한 수요는 그보다 더 늘어났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비싼 장인들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기술개발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장인들은 몰락했지만 전반적인 노동자들의 고용과 삶은 크게 개선되었다. Goldin and Katz에 따르면 이 흐름이 반전된 것은 20세기 들어 '전기'가 발명되어 보급된 이후의 일이다. 전기의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생산기술과 공정은 다시 한 번 크게 변화했다. 무겁고 큰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해야 하는 단순작업 노동자들은 이제 필요가 없어졌다. 그 보다는 기계를 조작하고 관리할 수 있는 보다 숙련된 기능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조금 딴 얘기) 전기가 우리 삶에 가져 온 변화는 엄청나다. 역사가인 Ekirch(2006)에 따르면 전기와 전구의 발명 이전의 사람들은 고된 육체노동을 하다가 해가 지면 곧 잠을 잤다. 그리고는 중간에 깨서 잡담을 하거나 섹스를 했다 (촛불이나 가스등을 켜고 책을 읽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그리고나서 새벽까지 또 잤다고 한다 (링크). 

이처럼 기술변화의 영향이 늘 한 쪽 방향으로만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 특히 사회적 수요의 변화나 경기변동에 따른 요인들까지 얽히면 판단하기가 더 어렵다. 일자리의 양극화 현상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까지만 보면 양극화가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2000년대 이후에는 고숙련 고임금 인력수요의 증가가 공급에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들도 제시되고 있다. Beaudry, Green, Sand (2013, 링크)는 미국에서 2000년대 이후에는 일자리 양극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대신에 고학력 인력들이 저숙련 직종을 밀어내며 하향취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이유로 이들은 정보기술과 컴퓨터의 채택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이 과정을 담당하는 고숙련 인력이 필요했지만, 2000년대 이후 그 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수요가 둔화되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는 아직은 확정된 가설은 아니다. 고숙련 인력고용의 부진은 2000년대 이전 IT붐이 과열되었다가 그 이후 조정국면이 온 여파일 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력과 직업에 따라 고용과 임금수준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내 주변만 봐도 같은 경제학자라 하더라도 어떠한 연구나 사회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연수입의 격차가 매우 커져가고 있다. 학력과 직업에 따른 평균적 수치만 보면 이러한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더 확실한 결론이 얻어질 때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심지어 최근의 추세만 보더라도 기술이 고용에 미치는 일관된 패턴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Katz and Margo(2013, 링크) 같은 이들은 그래도 일관된 패턴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고숙련 인력에 대한 수요는 과거나 지금이나 지속적으로 늘었다. 제조업만을 보면 20세기 이전에는 비숙련화, 그 이후에는 숙련화가 진행된 것이 맞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20세기 이전에도 고숙련 화이트컬러 직업은 늘어나고, 임금도 높아졌다. 이 효과가 제조업에서의 비숙련화보다 오히려 더 컸다는 것이다. 이들은 최근의 일자리 양극화도 비슷한 관점에서 해석한다. 중숙련 사무직들의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고숙련에 대한 수요는 늘 확대되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분석의 한계는 '고숙련'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달라짐을 반영 못하는 것이다. 화이트컬러 직장인은 중세 장인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술과 숙련도를 지닌다. 예를 들어 경제학적 분석능력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나같은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간다면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 살겠나? 완전 바닥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성격의 기술을 전부 뭉뚱그려 '숙련'이라고 한다면 숙련인력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높아져 왔다. 그러니 Katz and Margo의 결과는 기술발전의 영향을 일관적 패턴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생각과 모순된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될 것 같단 말인가? 

지금까지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이 쯤해서 묻고 싶으실 것이다. 그런데 그러니까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내 일자리는 안전할까?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인가? 자식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공부를 시켜야 하는가? 

정리해보자. 첫째, 로봇과 인공지능은 분명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발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완전히 앞서는 singularity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지난 500년 간의 패턴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둘째, 기술발전은 누군가의 일자리를 없앤다. 하지만, 모두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전체적으로는 일자리가 늘고 생활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런 결과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치열한 경쟁과 창의적 노력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셋째, 기술진보는 일관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고숙련자에 대한 수요는 여전할 것이다. 하지만, 숙련의 의미 자체가 시대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이를 한 가지 방향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로봇이 일자리를 없애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사회에서 최고 대학을 나와서 월스트리트 금융가에 취직한 사람들, 사법고시를 패스하거나 로스쿨을 높은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들은 최상위 1% 혹은 0.1%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현 교육과정에서 대체로 탁월한 기억력과 수학적 분석능력을 갖춘 이들, 또는 좋은 부모님을 만난 덕에 뛰어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이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컴퓨터가 투자분석을 더 잘하고 법적조언도 더 잘하는 시대가 되면 어떨까? 기억력이나 분석능력과는 다른 차별화된 능력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이다. 예컨대 공감의 능력 같은 건 로봇이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금융분석가나 법률가보다는 심리상담사나 편지 대신 써주는 사람이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도 아마 불평등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고급교육을 통해 공감능력을 학습시키는 것은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또 딴 얘기) 수능에서 영어보다 수학을 어렵게 내는 것이 '개천의 용'을 발굴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해 온 얘기다. 부의 대물림을 줄이는 것이 목표라면 고급교육을 통해 학습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부분보다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부분에 대한 테스트를 강화시키는 것이 낫다. 정보나 스펙이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요즘의 입시는 거꾸로 가고 있는 중이지만. 

미래에는 어떤 사람들이 잘 나가게 될  것인지를 다른 측면에서도 예측해보자. Bradford DeLong (링크)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류가 자신의 힘으로 뭔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던 방법은 다음의 여섯 가지로 분류 가능하다고 본다: 

a. 다리와 다른 큰 근육을 이용해서 사물을 옮김. 
b. 손가락을 이용해서 필요하거나 원하는 패턴으로 사물을 정리함. 
c. 를 이용해서 모든 종류의 프로세스들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통제함 
d. 입(과 손가락 타이핑)을 이용해서 다른 이들에게 정보와 즐거움(entertainment)을 전달함 .
e. 미소(smiles)를 이용해서 서로를 즐겁게 하고 공동체적 결속력을 높여줌
f. 정신(mind)을 이용해서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거리를 새로 만들거나 예전 방식을 개선함

산업혁명으로 나타난 기계들은 주로 a와 b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체했다. 대신에 기계를 이해하고 조작할 필요가 늘면서 c, d를 필요로 하는 작업들은 늘어났다. 그리고, 경제전체적으로 소득이 늘어나면서 e, f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다. 

DeLong은 컴퓨터와 로봇이 발전하더라도 a와 b에 대한 수요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지적한다 (아마 더 줄어들 것이다). 거기다가 c에 대한 수요도 컴퓨터가 대체하고 있다. d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다만, 인터넷과 SNS의 발전으로 몇 명의 슈퍼스타가 독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e와f는 singularity 전까지는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결국 미래에는 d, e, f 를 잘 하는 사람이 각광받을 것이다. 직업으로는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소설가, 인문학자 뭐 그런 직업들이 떠오른다 (이미 잘 나가는 스포츠 스타, 연예인, 꽃미남 셰프 등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일반 직업들 내에서도 d, e, f를 잘 하는 소수만 각광받고 그보다 일반적인 일을 하던 사람들은(예를 들면 보통의 공학, 경제학 전공자들) 사회적 가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SNS에 이사람 얘기가 자꾸 나오던데 찾아보니 홍대 전자전기공학부 수석입학자란다. 요리랑 무슨 상관인 지는 모르겠으나 현명한 선택을 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불평등이 과연 높아질까? 스포츠나 연예계를 보면 확실히 소수의 슈퍼스타들이 엄청난 부를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놓일 것인지의 문제다. 사람들이 슈퍼스타를 집중적으로 원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한 것이라면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로 비슷해져야 맞다. 이들이 아주 빈궁하게 산다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 된다. 하지만 다들 웬만큼 산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아이유만큼 돈은 못 벌더라도 동네에서 애들 노래교실 선생님 정도만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면? 지금의 현실을 들어 무슨 꿈같은 x소리를 하냐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링크 참조). 하지만 나는 현재가 아니라 로봇과 컴퓨터가 생산능력을 크게 키워 놓은 미래의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중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다. 로봇과 컴퓨터가 직업을 많이 없앤다 하더라도 그게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리라는 법은 없다. 대를 이은 교육과 지식의 전수를 통해 불평등을 대물림할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1%의 스타에게 부가 더 집중될 가능성은 있지만, 나머지 99%는 서로 더 평등해질 가능성도 있다. 내가 볼 때 중요한 건 1%로 모이는 불평등보다는 나머지 99%가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느냐다 (이러니 내가 우파꼴통 소리를 듣게도 생겼다).   

그럼 Singularity 이후의 미래는?

잘 모르겠다고 이미 말씀드렸지만, 그냥 재미로 덧붙여 보자. 경제학과는 무관한 얘기라는 점을 다시 말씀드린다.  
 
50년 후에 Singularity의 순간이 와서 모든 면에서 로봇이 인간을 따라잡는다고 해보자. 물론 50년 후면 나하고는 관계 없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내 자식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으니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로봇과 컴퓨터가 사람들을 정복하고 노예로 삼는 (또는 인간이란 존재가 마뜩치 않아서 다 없애버리는) 끔찍한 시나리오를 떠올린다.  

하지만, 로봇이 대체 왜 그런 걸 원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인간은 과거에 왜 다른 인간을 정복하거나 노예로 삼기를 원했는가? 생존과 생식(번영)을 위해서 필요한 희소한 자원을 확보하는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에게 찾아 온 풍요는 그러한 야만적 수단의 필요성을 많이 없앴다. 그래도 우리의 DNA에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는 관계로 종종 호전성이 발휘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로봇은 어떤가? 로봇이 필요로하는 자원(전기, 금속 등등)은 인간의 필요와는 별로 겹치지 않는다. 인간을 배터리 삼아 동력을 뽑아내야 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상황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 로봇이 우리를 굳이 정복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다른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로봇을 사주하는 일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로봇이 지금보다 똑똑해질 수록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Matrix의 한 장면: 하지만, 인간을 밧데리로 쓰는 것은 에너지 효율상 정말 바보짓이라는 게 과학자들 얘기다. 굳이 생체 밧데리가 필요하면 조류나 낙타가 더 낫지 않냐는 얘기도 있다. 원래 대본에서는 인간 뇌의 컴퓨팅 파워를 이용하는 거였다는데...singularity 이후라면 그 것도 말이 안 된다. 

로봇이 우리 할 일을 전부 없애버릴 것이라는 예측도 마찬가지다. 질문은 '왜?'이다. 로봇은 우리랑 달리 일하는 걸 엄청 좋아하기라도 할 거란 말인가? 우리 일을 뺏아서 로봇이 무슨 부귀영화를 얻는다는 말인가. 설령 일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인간이 그렇게 프로그램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로봇의 문제는 모두 인간의 문제로 환원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자 (너무 SF로 나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인간이 만든 로봇이 감정과 자아를 가지게 된다. 생각과 판단을 할 줄 알고, 학습도 하며, 지적인 대화도 똑같이 한다. 심지어 모습과 재질마저도 인간과 비슷하다. 그런 경지에까지 간다면 인간이 자손을 남기는 과정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먼 훗날 어렵게 자식을 낳고 키우느니 차라리 자기를 닮은 로봇을 하나 만들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그 상황까지 가면 우리가 아는 형태의 '인간'은 점차 밀려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일까? 인간의 새로운 진화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미래 얘기는 재밌지만 이 정도로 하고, 다음 글에서는 '기회의 평등'에 관한 얘기를 해보겠다. 이제 이 시리즈도 슬슬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오늘의 요약 >

(1) 기술진보는 누군가의 일자리를 없앤다. 하지만,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전체적으로는 일자리도 늘고 생활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런 결과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치열한 경쟁과 창의적 노력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2) 기술진보는 일관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고숙련자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높을 것이다. 하지만, 숙련의 의미 자체가 시대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한 가지 방향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어떤 직업이든 입(커뮤니케이션), 미소(즐거움과 공동체적 통합), 정신(창의력과 개선)이 가치창출의 중심이 될 것이다.  

(3) 로봇과 컴퓨터가 반드시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리라는 법은 없다. 고급교육과 지식의 전수를 통해 불평등을 대물림할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1%의 슈퍼스타는 더 잘 나가도 나머지 99%는 (풍요롭게) 평등해질 수도 있다. 요는 한 쪽으로 예상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4) Singularity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로봇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모든 문제는 인간의 것으로 환원된다고 봐야 한다.  

덧글

  • ㅇㅇ 2015/09/28 02:27 # 삭제 답글

    피케티의 통계, 맨큐의 메뉴비용같이 한방씩 뭔가 터뜨리는 천재가 아닌이상.. 일반적인 경제학과 나온 졸업자들은 쓸모가 없어지는군요 슬픕니다
  • ㅇㅇ 2015/09/28 02:32 # 삭제 답글

    농업 인구가 줄어든 것처럼 제조업 인구도 줄어들고 서비스로 거의 다 이동했을때 e, f 같은 능력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좀 더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지는 세상이 될 수도 있지는 않나 상상해봅니다
  • ㅇㅇ 2015/09/28 02:37 # 삭제 답글

    또 소득수준이나 물질적 풍요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풍요가 가능하려면 네덜란드같은 나라처럼 노동시간이 감소하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텐데 케인즈나 러셀같은 사람들이 말한 노동시간의 엄청난 감소가 근미래에는 가능해질지에 대해서도 궁금하네요
  • 갭필러 2015/09/30 18:17 # 답글

    읽어주시고 코멘트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지금까지의 기술발전으로도 노동시간이 크게 줄었어야 맞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 물론 작업의 강도나 육체적 피로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기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사회문화적 요소 등 다른 것들의 영향도 큰 것 같습니다. ^^
  • ㅇㅇㅇ 2017/01/17 12:57 # 삭제 답글

    흥미롭고 좋은 글. 잘 읽었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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