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관하여 12-1: 경제력의 대물림과 Great Gatsby곡선> 불평등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말이다,...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 위대한 개츠비, 제1장 


스캇 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문학의 대표 격인 작품이다. 어릴 때 이 작품을 봤을 때는 흔한 통속소설 정도로 밖엔 여겨지지 않았다. '별 볼일 없던 한 청년이 벼락부자가 되어 첫사랑 앞에 나타난다. 귀족 집안에 시집가 권태를 느끼며 살던 여자의 마음을 흔들어 보면서 일편단심 순정을 바치지만, 그녀에게 개츠비는 어장관리 대상일 뿐이다. 결국 버림받고 그녀의 죄까지 덮어 쓰고 죽지만 아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줄거리만 보자면 참 한심한 얘기다 (미국 애들이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자랑할 작품이 고작 이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솔직히 지금도 이 소설이 '위대'하다고 까지는 생각되지 않는다 (번역 대신 원문의 문학성을 음미할 수 있는 영어실력이라면 생각이 달라질 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이를 먹고 다시 보니 좀 더 감정을 이입하면서 음미하며 읽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모든 인생이 통속소설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알 나이가 되어선 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의 개츠비는 신분상승의 꿈을 가지고 노력했지만 끝내 좌절한, 아메리칸 드림의 한계를 보여주는 주인공이다. 신분이나 혈연, 지연, 학연 같은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흘린 땀과 개인의 능력으로 보상받는 사회....과거 미국은 그런 기회의 땅으로 생각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는 그런 인식이 남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경고음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의의 의장이던 Alan Krueger는 국가별 소득불평등도와 소득의 대물림 수준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제시하면서(링크) 여기에 'Great Gatsby 곡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그래프의 가로축에는 지니계수, 세로축에는 세대간 소득탄력성이 표시된다. 지니계수에 대해서는 에전에 자세히 설명했다(링크). 세대간 소득탄력성(Intergenerational Income Elasticity)이란 아버지의 소득이 전체 소득분포 대비 1% 높을 때 아들의 소득은 몇% 높게 나타나는 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아버지의 소득이 아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이 값은 0이다. 반면, 둘의 소득이 완전히 똑같이 높거나 낮다면 이 값은 1이 된다. 즉, 세대간 소득탄력성은 경제적 능력의 대물림이 얼마나 이루어지는 지를 측정한다. 한 사회의 기회의 평등 수준을 반영하는 지표라고도 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KDI의 김희삼(링크) 박사의 보고서에 실린 Great Gatsby곡선이다(내가 본 걸로는 한국을 포함시킨 유일한 버전이다).  이걸 보면 두 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첫째는 소득불평등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세대간 소득탄력성도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결과의 불평등과 기회의 불평등이 그리 다른 개념이 아닐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둘째는 한국의 위치가 상당히 모범적(?)이라는 것이다. 지니계수로 측정한 불평등 수준도 아주 높지 않지만 특히 세대간 소득탄력성은 0.2 정도로 비교국가들 중 거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의 다른 국내 연구들은(양정승, 2012, 링크/김봉근 외, 2012, 링크) 0.3 정도의 추정치를 구하고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낮은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유행하는 이른바 '금수저론'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설득력이 없다. 미래에 대해 우려를 해야 할 만한 이유는 충분히 많지만 과도하게 헬조선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오늘은 한국 상황보다는 첫번 째의 내용, 즉 Great Gatsby 곡선으로 드러나는 두 가지 불평등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Krueger는 이 그림을 통해 미국에서의 최근 소득불평등의 심화 추세가 기회의 평등마저 빼앗아 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소득불평등에 대한 적극적 대처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 발표는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Krueger의 작명센스가 워낙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예전(링크)에도 논했지만 '결과의 불평등'에 대한 우려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들은 불평등의 존재 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끼는 반면, 다른 이들은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다. 하지만, 후자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기회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낀다. 결과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 용인한다고 해서 (최소한 본인과 후손이 늘 최상위 계층에 있을 것이라 확신하지 않는 한) 고정된 계급사회까지 옹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Great Gatsby 곡선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구분해서 보는 이러한 시각이 큰 의미가 없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결과의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각에 큰 힘을 싣는 것은 물론이다. 

시작과 결과는 결국 동전의 양면일 뿐이란 말인가?

참고로, Great Gatsby 곡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Krueger지만, 두 지표를 대비해 그림을 그려 본 것은 캐나다의 경제학자 Corak(2012)(링크)이었다. 똑같은 연구라도 그냥 묻힐 수도 있고,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를 사용하고 세일즈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경제학 연구에서도 마케팅은 중요하다. 그런가 하면 Great Gatsby 곡선이라는 작명이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다. Jay Gatsby가 실패한 건 연애일 뿐 그는 오히려 벼락부자가 된 사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걸 따지지 않고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Krueger가 똑똑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설득되기는 이르다. 단지 두 지표가 서로 같은 방향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만 보고 바로 결론이 난 것이라 본다면 여러분들은 경제학자들을 너무 띄엄띄엄 보고 있는 것이다. 우선 Mankiw선생이 빠지지 않고 한 마디 던졌다(링크). 그의 포인트는 애초에 국가별로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한 비유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체스클럽(국가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다고 해 봅시다. 모든 클럽에 대해서 개인의 승패 자료(소득)를 취합해요. 그리고 각 개인의 승률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를 측정합니다(불평등도). 개인별 승률의 순위가 한 해가 지난 후에 얼마나 변화하는 지(이동성-세대간 소득탄력성)도 측정하죠. 어떤 클럽은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승률은 비슷하고, 순위는 해마다 크게 바뀌겠죠(불평등은 낮고 이동성은 큼). 반면, 다른 클럽은 체스의 장인과 초보자가 섞여 있습니다. 그럴 경우 승률은 크게 차이나고 순위는 거의 고정되어 있을 겁니다(불평등은 높고 이동성은 낮음). 이 클럽들의 자료를 다 모아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Great Gatsby 곡선 같은 게 나올 겁니다."

Mankiw를 싫어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얄밉겠지만(분노의 반응 링크) 그의 지적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미국같이 엄청나게 크고,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나라들과, 인구 수백만에 불과하고 동질성이 매우 큰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를 함께 비교하는 것에는 많은 무리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Great Gatsby 곡선에는 조금 더 원초적인 문제가 있다. 세대가 지나면서 불평등도가 더 커지는 나라일수록 세대간 소득탄력성의 추정값도 커진다는 점이다. 이건 통계학이 필요한 문제이긴 한데 오류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아래 그림에서 가로축이 부모의 소득분포를 나타내고, 세로축이 자식의 소득분포를 나타낸다고 해보자. 오른쪽과 위쪽으로 갈수록 높은 소득을 의미한다. 만일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식의 소득을 결정한다면 붉은 선과 같은 정(+)의 관계가 드러날 것이다. 이 붉은 선의 각도의 크기가 대충 세대간 소득탄력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식대의 불평등도가 부모 때보다 악화되어 (1)이 아닌 (2)와 같이 더 넓게 퍼지게 된다면 붉은 선의 각도도 자연스럽게 더 커진다. 모든 국가가 동일한 정도의 세대간 변화를 겪지 않는 한 서로 비교하기가 곤란한 이유가 된다.  

별로 궁금하시지 않겠지만 이는 '세대간 소득탄력성 = 세대간 로그소득상관계수 *(2세대 소득표준편차/1세대 소득표준편차)'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Janti and Jenkins(2013, 링크)에 따르면 사실 세대간 로그소득 상관계수로도 국가별 소득분포의 차이로 인한 왜곡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고, 소득순위의 상관계수(rank correlation)을 구해야만 이런 문제가 사라진다.    

다시 말하면, 불평등도가 점점 악화되는 나라에서는 세대간 소득탄력성도 크게 측정되고, 반대로 불평등도가 줄어드는 나라에서는 세대간 소득탄력성도 작게 측정된다. 실제로 Great Gatsby 곡선의 우상귀에 있는 미국,영국,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지난 수십년간 불평등도가 악화된 나라들이고 그에 반해 모범국에 속하는 스웨덴, 핀란드, 일본,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불평등도의 변화가 적었던 나라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아니더라도 세대간 소득변화의 양상에 대한 연구는 아직은 충분히 발전되지 않았고, 자료도 충분하지 않다는 계 학계의 시각이다. 최근의 연구성과들을 집대성하여 리뷰한 Janti and Jenkins (2013, 링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Great Gatsby곡선의 대중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세대간 소득의 대물림이나 소득의 이동성이 국가 간에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그리고 이것이 국가들의 불평등도 수준과 어떤 관계가 있는 지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낸 것은 거의 없다."  (이 논문은 Handbook of Income Distribution에 실린 것으로 소득 이동성에 대해 무려 129페이지에 달하는 리뷰를 싣고 있지만 솔직히 어렵고 지루해서 자세히 읽는 건 포기했다). 

Great Gatsby 곡선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부정하거나 반대되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그냥 어떤 쪽으로든 확실한 증거가 될 만큼의 자료와 연구결과가 부족한 것일 뿐이다. 사실 불평등의 정도가 커질수록 개인의 노력으로 그걸 극복하기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계층의 사다리가 실제로도 있다고 상상해 보자. 사다리의 한 칸은 그 사회에서의 경제적 순위를 의미한다. 불평등도가 커진다는 것은 사다리의 길이가 늘어나면서 칸과 칸 사이도 멀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아무래도 그렇게 될수록 사다리를 올라가기 힘들어 지지 않을까? (물론 올라간 높이가 중요하지 몇 개의 칸을 올라갔느냐가 뭐가 중요하냐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런데, 이런 직관과는 배치되는 최근의 연구결과가 있다. 하바드의 Raj Chetty와 버클리의 Emmanuel Saez (Piketty와 종종 공동연구를 하는 바로 그 Saez다) 를 포함한 4명의 팀은 몇 년 전부터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무려 4천만 명의 아이들과 그 부모에 대한 자료를 분석했다)를 이용하여 기회의 평등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비록 미국에 한정된 연구이긴 하지만 이들이 밝혀내고 있는 사실들은 매우 흥미롭다. 일단 Great Gatsby 곡선과 연관된 내용만 소개하면(논문링크요약링크) 다음과 같다. 1971년에 하위 20% 소득군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상위 20% 소득군에 도달할 확률은 8.4%였는데, 1986년생들의 경우 이 확률은 9.6%가 되었다.  1984년에 최고소득층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확률은 최저소득층에 비해 74.5%p가 높았다. 그런데 이 비율의 격차는 1993년 생에 대해서는 69.2%p로 줄어들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미국의 '결과적' 불평등은 크게 늘어났다. Great Gatsby 곡선의 예측대로라면 기회의 불평등도 크게 늘었어야 한다. 하지만 Chetty 팀의 연구결과는 미국에서의 기회의 불평등이 별 차이가 없거나 심지어 약간 줄어들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림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계층의 사다리는 길어졌고, 칸과 칸 사이도 멀어졌지만 그 칸을 올라가는 일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그보다 전 시기(1950년과 1970년대생)를 연구했던 기존연구(대표적으로 Lee and Solon, 2009, 링크)와도 유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Chetty팀은 20세기 후반동안 미국에서의 사회적 이동성의 수준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추론한다. Chetty 팀과 일관된 결과는 Great Gatsby 곡선의 원저자인 Corak에 의해서도 일부 뒷받침되었다. Corak, Lindquist, Mazumder(2014, 링크)는 캐나다, 스웨덴, 미국 등 3국의 자료를 이용해서 세대간 소득 이동성을 새롭게 추정해 보았다. 이들은 세대간 소득탄력성 대신에 소득순위 변화를 살펴봤는데, 그 결과 3국의 '상향'이동성(자식의 소득이 부모보다 높아질 확률)은 거의 차이가 없었고, '하향' 이동성은 캐나다만 조금 더 컸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예를 들어 상위 20%에 들었던 부모의 자식 중 그 이하로 떨어질 확률은 캐나다가 67%이고, 미국은 62%, 스웨덴은 60%였다. Great Gatsby 곡선에서 스웨덴과 캐나다의 위치와 미국의 위치를 비교해 보면 이런 결과는 놀라운 것이다.  

안도(?)하거나 실망(?)하기에 앞서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 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Chetty 팀의 다른 연구(논문링크요약링크)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을 741개의 소지역으로나눠서 세대간 소득변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시애틀이나 실리콘밸리의 산호세 같은 도시의 소득이동성은 덴마크 같은 나라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았지만, 중남부의 애틀란타나 쇠락한 산업도시인 밀워키 같은 곳의 이동성은 크게 떨어졌다. 이는 불평등의 수준 그 자체보다는 사회문화적 환경이나 경제적 역동성 같은 요인들이 세대간 이동성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들은 지역사회의 분리정도(인종, 소득에 따른 거주지역 분리, 통근거리 등), 학교의 수준, 사회적 자본(종교나 시민참여 수준), 가구구조(부모의 혼인상태) 등이 그 지역에 태어난 아동들의 소득 이동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침을 밝혀냈다. 

Corak(2013, 링크) 역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제시한다. 소득이동성 선진국(?)인 캐나다와 미국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는 최하위와 최상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중위 80%의 경우에는 양국에 차이가 거의 없지만, 최상위와 최하위 10%에 속하는 부모의 자식들이 그 수준을 유지하거나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미국이 캐나다보다 더 크다. 그는 이에 대해서 별다른 추가해석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최상위와 최하위 계층을 대체로 어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를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도 사회문화적 해석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마무리 해보자. Great Gatsby 곡선의 대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아직까지는 그리 유효하다고 볼 수 없다. 기회의 평등에 무게를 두는 보수와, 결과적 평등도 (사실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진보는 아직도 논쟁할 일이 많이 남은 듯하다. 그런데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서는 경제학자들이 기회의 평등 문제를 연구한 게 너무 적은 것도 사실이다. 기껏해야 세대간 경제력의 대물림 정도에 대해 일부의 결과, 그것도 그리 명확치 않은 것들만 얻었을 뿐이다. 

더구나 '기회의 평등'은 단순히 부모와 자식의 소득수준의 연관성 정도로 서술하기에는 훨씬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개념이다. 설령 경제력의 대물림 현상이 관찰된다고 하더라도 그것 만으로 그 사회에서의 기회가 평등하지 않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 반대로 소득의 대물림 현상이 확대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환경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 받는 혜택의 차이는 불평등이 커질수록 더욱 벌어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Chetty 팀의 표현을 따르면 탄생복권(birth lottery)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적인 틀로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어쨌든 이를 좀 더 논의해 볼 것이다. 

< 오늘의 요약 >  

(1) Great Gatsby곡선은 불평등의 수준과 경제력이 대물림되는 정도를 국가별로 비교한 그림이다. 둘 사이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나타나는데, 많은 이들은 이를 '결과의 평등'이 '기회의 평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이자 불평등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로 해석했다. 

(2) 하지만, 해석의 문제를 떠나서 국가간 비교의 부적절성이나 지표의 불완전성, 자료의 부족 등으로 인해 Great Gatsby 곡선이 검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경우에는불평등 증가에도 불구하고 세대간 이동성에는 변화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3) 경제력의 대물림은 부모소득의 불평등 보다는 사회문화적 요인이나 경제의 역동성 등과 더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순히 경제력 대물림 현상의 연구가 '기회의 평등'이라는 더 큰 주제에 대한 논의로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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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칸 드림과 사회 이동성 &#8211; Isaac의 생각저장 창고 2015-12-05 22:42:00 #

    ... 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확실히 높다. (Y축은 위의 자료와 숫자가 같다. 갖은 출처의 자료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image source: 권남훈 교수 포스트 재인용) 이러한 괴리가 어디서 오는 걸까? 인용한 Julia Isaacs 팀의 자료를 통해 몇가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long term soc ... more

덧글

  • 다시다 2015/08/04 23:54 # 삭제 답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모두의 꿈이 임대업자인 시대에 좀 의외인 면이 있네요.
  • 갭필러 2015/08/05 13:57 #

    감사합니다. 임대업이 생각보다 힘들고 돈도 안 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안 해 봐서 모릅니다), 원래 이런 연구가 수십년 전후를 비교하는 거라 최근의 상황변화가 반영이 덜 된 것일 수도 있긴 합니다. 한편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제보다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고요 ^^
  • RB 2015/08/12 16:54 # 삭제 답글

    종합적으로 최근 연구들을 연결시킨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라면 E.Saez 교수님의 연구나 R. Chetty의 연구 쪽에 일부 더 추가하고 싶네요. 인용하신 연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국의 세대간 불평등이 개선되어온 측면을 밝힌 것도 있지만, Saez교수님의 다른 연구를 보면 덴마크하고 비교해서 미국의 세대간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강조하십니다(자식세대와 부모의 소득 분위수를 비교했던 연구로 기억합니다). 글의 일부만 보면 미국의 세대간 이동성이 대수롭지 않은 수준처럼 느껴지는데, 약간 균형을 더 맞춰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또 Raj Chetty는 2015년 논문을 통해서 세대간 소득불평등의 지역별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분리해서 보이는데 그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뉴욕 도심은 단순히 상관관계로만 보면 기회의 땅처럼 보이지만, 인과관계 분석을 시도해보면 기회의 땅이 아니라고 합니다. 범죄율이 낮고, 인종적으로 균형잡힌 지역들에서 사는게 실질적으로 자식세대의 소득이동성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민자들의 경우에는 지역에 상관없이 자식세대의 상층이동성이 높게 나타난다고 하는 점도 흥미롭고요.
  • 갭필러 2015/08/13 20:36 #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제안에도 감사드립니다. 단순히 흥미로 시작한 일이다 보니 관련 연구를 다 포괄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네요. 글을 쓰다보면 본의 아니게 제가 더 관심이 가는 연구 위주로 편중되기도 하고요. ^^ Chetty의 2015년 논문의 일부 내용은 나중에 소개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Saez의 다른 연구는 제가 잘 모르는 것이라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윗 글의 포인트는 소득불평등이 악화되었음에도 rank mobility는 특별히 악화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와는 다른 결과인 건가요? 그렇다면 소개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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