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관하여 14-6A: 청년의 사회진출 1> 불평등

마지막 정책방향은 청년의 사회진출 촉진에 대한 것이다.

청년들이 취업할 만한 '좋은 직장'이 줄어들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청년실업률이 12.5%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링크). 

젊을 땐 가진 것 없이 시작했지만 열심히 일해서 자리 잡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은 세상이다. 이 시리즈의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희망을 잃은 헬조선이니 하는 얘기가 자조적으로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하지만, 더 많은 청년들이 사회로 진출하고, 많은 기회를 찾아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설령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은 줄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방향이다 (기회가 넘치는 땅에서는 오히려 불평등은 증가할 수도 있다. 이는 급성장을 해 온 중국의 불평등이 세계 최고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1980년에서 2012년 사이에 중국의 하위 20%의 소득은 3.3배 늘었지만, 상위 20%의 소득은 10.4배나 늘었다. 그 결과, 상위 20%의 소득비중은 47%, 하위 20%의 소득비중은 4.7%에 불과하다 (자료: Cevik and Correa-Caro, 2015, 링크)

하지만,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답은 없다. 청년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경제성장 둔화와 경기침체의 직접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고용과 투자는 비슷한 면이 있다. 기업에게 있어 빠져나간 인원의 자리를 메꾸는 것은 감가상각된 부분을 회복하는 유지보수 투자와 같고, 신규 고용을 늘리는 것은 사업확대를 위한 투자와 비슷하다. 여건이 나빠지더라도 기업이 사업을 쉽게 중단하지는 않지만 신규투자의 경우라면 0으로 줄인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 우리처럼 노동시장이 (적어도 정규직의 경우) 경직적인 나라에서는 기존 직원들의 교체가 어렵기 때문에 여건이 악화되면 청년 신규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더 커진다. 그러니 경기가 나빠지고 성장이 둔화되면 청년들이 받는 타격이 경제 전체보다 훨씬 더 큰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실제로 Kawaguchi and Murao (2012, 링크)는 1971~2008년의 OECD 18개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용보호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청년 실업률이 일반실업률에 비해서 높다고 분석하였다.  

청년실업률과 전체 실업률 사이의 격차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경제위기를 거치며 심화되고 있다. 또한, 경제성장이 둔화될 때 그로 인한 청년실업률 증가폭은 다른 연령층의 2배가까이 된다 (자료: LG경제연구원 2015, 링크)
 

성장둔화나 경기침체는 청년의 사회진출을 돕는 몇 가지의 정책 정도로 반전시킬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경기야 앞으로 회복될 수도 있겠지만 경제성장의 둔화는 한국의 성장단계상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청년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면 (노동시장이 크게 유연해져서) 경쟁력이 없는 기성세대의 자리를 빼앗아 내어 주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바람직한 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당장 나부터도 막상 밀려나는 대상이 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청년세대에게 공정한 길이라 하더라도) 기득권에 기대어 끝까지 버티고 싶어지지 않을지 자신이 없다.

누가 아는가? 나도 조만간 자리만 확보할 수 있다면 창피고 뭐고 신경도 안 쓰는 노인이 될지? (자료: 동아일보, 링크)  

청년세대의 입장에서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한 가지 방법은 기존의 기업과 일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대신에, 이를 완전히 대체하는 새로운 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비슷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굳이 선택하라면 나는 이 쪽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기성세대에게 자리를 달라고 분노와 하소연을 쏟아낸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청년 스스로 길을 만들어 힘으로 기성세대를 밀어내는 쪽이 그나마 더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쓰니 기성세대와 청년 간의 관계를 너무 제로섬처럼 얘기한 것 같은데, 이러한 도전의 과정 자체가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서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역대 정권들은 청년고용정책을 전면에 내걸어 왔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하는 "한권으로 통하는 청년고용정책(링크) 2015년판"을 보면 중앙부처와 지자체에서 벌이는 무려 298개나 되는 사업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 모두가 청년고용에만 집중하는 정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청년고용촉진 정책에 쓰는 예산만도 연 2조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엄청나게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대개는 인턴이나 교육훈련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용의 주체는 결국 민간이고 (공무원을 많이 뽑는 것을 고용대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는하다), 민간취업에 도움이 되는 훈련이 정말로 있다면 민간 스스로가 아마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훈련내용을 일일이 지정하고 대상자를 선발하는 식의 접근은 행정비용을 늘릴 뿐이다 (때로는 행정처리를 위한 일자리 창출효과가 더 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 


최근 성남시에서는 지역에 만 3년 이상 거주한 24세 이상의 청년에게 연 100만원 상당의 지역상품권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청년배당제도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추진 중이고, 총선이 가까워 오면서 야당은 물론 정부 일각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링크). 

보편적 지원이냐 선별적 지원이냐는 철학의 차이는 있겠지만, 요즘 이런 제도가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인턴이나 훈련지원 제도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에도 원인이 있다. 하지만, 기존의 프로그램들은 그대로 두면서 청년들에게 용돈 수준의 돈을 던져 주는 식이라면 수 백 개의 정책 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하는 생색내기에 불과할 것이다. 이보다는 차라리 장학금을 더 늘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는데 물론 그런 '새롭지 않은' 정책으로는 매스컴 타기가 어렵긴 하다. 
   
비판은 쉽지만 네 대안은 뭔데? 라고 물어보면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되, 그 상태에서 몇 가지 생각을 보태 보겠다. 기본적으로 내 생각은 교육에서 구직에까지 이르는 현재의 과정들이 너무 기존 기업들의 인력수요에 맞게 틀에 박힌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변화를 가져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청년들에게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주는 것에 있다고 본다.  


(1) 교육기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

첫 번 째로 고려할 것은 학제개편이다. 2015년 10월 새누리당과 정부는 현재 초등학교 6년, 중고교 6년으로 되어 있는 학제를 각 5년씩으로 줄이고, 대학도 3~4년으로 다변화하는 식의 학제개편안을 들고 나왔다(링크). 최대 3년까지 노동시장으로의 진출시기를 앞당기겠다는 것인데,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대책의 하나로서 제안되었다. 말하자면 늦게까지 학교에 붙잡혀 있다보니 취직도 늦고, 결혼도 늦게 하고, 아이도 잘 안 낳으니 학교를 다니는 기간을 줄여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이 나오게 된 동기가 정말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대책 때문만인지는 잘 모른다. 정말 맞다면 신선할 정도로 과감한 제안이긴 하지만 설득력은 크게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거칠게 말하면 공부 많이 할 생각 하지 말고 빨리 돈 벌고 시집장가 가서 애나 좀 쑥쑥 낳아달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교육계가 반발함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입장에서도 거부감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정책발표 후의 각계의 반응이나 SNS등의 여론도 그렇게 흘러갔다(그나마 진지하게 이루어진 찬반토론은 링크를 참조). 

그러니까...출산기계가 낡기 전에 많이 쓸 수 있도록 하자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사진 출처: KBS, 링크).  


하지만, 저출산 대책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을 떼어서 놓고 보면 교육연한을 단축하는 학제개편안은 설득력이 있다. 한국은 대학진학률이 지나칠 정도로 높고, 그러한 상태가 이미 사회적 균형으로 고착화되어 있어 "대학은 뭐하러 가려고 하느냐" 같은 얘기가 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내 아이를 대학에 진학시키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로 인해 상당수의 학생들은 불필요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다.


군대라는 특수요인도 있긴 하지만 한국 청년의 사회진출 연령은 OECD 평균에 비해서 5년 정도보다 늦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고학력이 필요한 직장이 월등히 많은 것도 아닌 이상 많은 청년들에게 있어 대학재학 기간은 사회적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불하는 비용이다 (나는 그 비율이 대학 진학자의 최소 절반은 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성공한 일부 연예계나 스포츠 스타를 제외하면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것은 열등재라는 트라우마를 이마에 붙이고 시작하는 꼴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10년전 조사이긴 하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나아졌을 것 같지는 않다 (출처, 한경닷컴, 링크).  

물론 대학재학 기간이 그 자체로 낭비라는 것은 아니다. 꼭 학습이 아니더라도 대학을 다니는 경험 자체로부터 얻는 것은 많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할 비용까지 생각하면 많은 이들이 손해를 보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로 인한 비용지출은 어떤 이들에게는 가난을 평생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의 굴레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학제개편을 통해 전체 교육기간을 줄이는 것은 실용적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졸업시까지의 교육의 양을 현재의 대학 2학년 정도 수준으로까지 줄이고, 그 대신에 추가적 교육이 필요한 직업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실용석사과정을 도입하는 등의 방법은 어떨까 생각한다 (논문을 쓰고 학술 중심인 기존의 석사과정이 아니라 고급 실용과정만 이수하면 석사를 얻는 방식이다). 고교까지의 과정은 지금보다 1년 정도 줄이고, 대학도 큰 어려움 없이 3년 정도 안에 졸업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개편하는 것이다. 반값등록금과 같은 정책보다는 이 쪽이 모두에게 훨씬 더 나은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에 대해 일자리도 없는데 빨리 졸업만 시키면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는데, 불필요한 낭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설령 실업률을 높이더라도 경험을 쌓고 더 기회를 찾아 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  


영재만 말고 모두가 조기졸업을 하자 (사진: 윤소희 in SBS 러닝맨)

한 가지 추가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고교까지의 교육기간을 축소시킨다면 그 중 1년 정도는 대학입학 시점 이전에 사용할 수 있는 자유시간으로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즉, 고교졸업시점(예를 들어 1년 축소 시에는 현재의 고교 2학년 말)까지 대학진학 여부는 결정하되, 실제 입학은 1년 간 유예하는 식이다. 그 1년 동안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일을 할 수도 있고, 여행을 다닐 수도 있고, 군대부터 갈 수도 있다.

요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자유학기제와도 비슷한데 이를 고교 졸업생들에게 실시하자는 것이라고도 볼 수 도 있다. 솔직히 부모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놓여 있고,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만큼 성숙하지도 못한 중학생들보다는 고교 졸업생들에게 이러한 기간을 주는 것이 훨씬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사회경험도 해보고 대학 등록금도 미리 버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여행이나 다른 활동을 위해 쓴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대학생활을 훨씬 알차게 만들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학기제의 벤치마크가 되었던 해외사례 중 하나인 영국의 Gap Year가 바로 이런 아이디어다 (자료 링크

물론 약간 생각해야 할 부분들은 있다. 예컨대 학문을 추구하는 영재들의 경우 이 1년의 시간이 오히려 낭비가 될 수도 있다. 그 경우 조기졸업이나 조기진학의 경우처럼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즉시 진학을 허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학입시에 재수를 하는 경우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 지도 연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재수생에 대해서는 즉시 진학을 허용할 경우 재수생만 양산하게 되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지만 공감될 수 있다면 이런 문제점들은 어떤 식으로든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이다. 


(2) 대기업이 경력사원만 뽑으면 어떨까?

중소기업들은 유능한 인력을 유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껏 인력을 키워 놓으면 대기업들이 빼간다고 늘 불평한다. 반면,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에 대한 경쟁률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12년 동반성장위원회는 '전문인력유출 심의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대기업은 중소기업으로부터의 인력유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채용이 불가피할 경우 피해를 막기 위해 위원회가 중재나서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링크). 자칫하면 중소기업 근무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하게 될 수도 있는 이러한 기능은 (다행히도) 그리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2013년에는 같은 기능의 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하자는 국회의원 발의도 있었던 것을 보면(링크) 이런 발상이 또 언제 전면에 부각될지도 모를 일이다. 

중소기업에 장기근속한다는 게 좋은 얘기로 들려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사진 출처: 링크

당시에 나는 이와는 정 반대의 생각을 했다. 주변에 취업 때문에 고생하는 학생들을 보면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훨씬 쉬운데도 불구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을 때까지 버티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이는 중소기업이 조건도 안좋고 안정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개인의 성장기회가 부족하고 사회적 낙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좋은 회사를 다니지 못하면 나중에 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고, 장래성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결혼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쩌면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일 지도 모른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의 직업별 등급이라고 돌아다니던 자료 (출처: 모름)

중소기업으로 인재를 모으고 창업을 활성화하려면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내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중소기업을 경유한 인재 선발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 들이 사원 중에서 상당비율은 중소기업 3년 이상의 경력사원 중에서만 뽑는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대기업 입장에서도 특별히 나쁠 것이 없고, 대기업을 가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을 거쳐가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일부러라도 중소기업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늘 것이다. 

중소기업은 기껏 키워 놓은 인재를 뺐긴다고 걱정하겠지만 옮겨갈 사람들은 어차피 옮기게 마련이다. 중소기업의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대기업에 가있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라면 처음 생각과는 달리 대기업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머물거나, 나중에 다시 돌아오려는 인재들도 생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발상의 대전환을 필요로 하므로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접근법으로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 얘기를 처음 했던 2012년에 페친인 남충현 박사는 이런 인력채용 방식이 축구팀들의 운영방식과 비슷하다는 논평을 했다. 실제로 네덜란드/벨기에/포르투갈 리그의 팀들이나 또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아스날 같은 팀들은 젊고 잠재력이 높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리고 좋은 성적을 낸다. 이들은 유능하지만 레알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첼시나 맨체스터시티와 같은 빅리그의 스타군단 팀들에 가기는 아직은 미흡한 선수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몸값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지게 되면 다른 팀으로 이적시킨다.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선수들만을 뽑을 것을 고집하거나 이적을 방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우수한 능력의 젊은 선수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아스날은 한동안 에이스 선수를 팔아치우는 구단으로 유명했다. '킹 앙리'라고 불리던 티에리 앙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7년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다. 

이러한 접근법은 창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하다. 요점은 젊은 시절의 몇 년을 바쳐서 다양한 활동을 하더라도 경력에 지장이 없도록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벤처활성화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서 실패했을 때의 개인이 져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 있다. 이것은 금전적인 부분 뿐 아니라 개인의 경력관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더라도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여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벤처창업의 부담도 줄어들것이다. 

아울러, 이런 식으로 해서 경력사원 위주의 채용문화가 되면 근로자들의 협상력 제고와 기업문화의 변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우수한 인력이라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부터 한 회사에만 몸담으면 회사 밖에서도 통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래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직을 할 경우 지금보다 훨씬 낮은 대우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회사에 대한 협상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회사에서 지속되는 야근과 부당한 대우가 이어져도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마찬가지로 평생 한 직장에 몸을 담는 환경에서는 회사 내의 지식이 각 개인에게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의 형태로 체화되고, 문서화나 조직 단위의 축적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경험과 관행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관리자의 육성을 위해 부서를 돌아가며 근무하다보니 전문성의 확보도 어렵다. IMF외환위기 때 평생고용의 관행이 깨지면서 나는 한국기업의 (일본을 닮기도 한) 이런 조직적 속성이 조만간 깨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기업의 속성의 지속력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은 하나의 주제는 군복무 기간의 활용에 관한 것인데,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여기서 일단 끊기로 하자.

< 오늘의 요약 > 

더 많은 청년들이 사회로 진출하고, 기회를 찾아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불평등 해소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정책방향이다. 하지만, 청년실업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부진과 성장둔화이고, 고용구조가 경직되어 있을수록 청년들에게 가해지는 타격은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 

- 이런 요인들은 구조적인 것이어서 향후에도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렵긴 하지만 청년들이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업과 일자리를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 최근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서 초중고 연한을 단축하는 학제개편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가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청년의 사회진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육기간의 단축은 한국사회의 과잉교육 경향을 부분적으로 해소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추가로, 영국처럼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진학 이전의 기간을 띄워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갭이어(gap year)제도의 도입을 검토해 볼 만 하다. 

- 청년 취업난의 원인 중 하나는 처음부터 대기업 중심의 좋은 일자리를 찾아가지 않으면 노동시장에서 도태된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중소기업이나 벤처창업 기간을 거치더라도 경력관리나 사회적 위신에 전혀 문제가 없다면 이러한 문제는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상을 크게 전환하여 대기업들은 신입직원보다는 경력직원 위주로 뽑고, 우수한 인력들이라도 먼저 중소/벤처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에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관행이 정착되도록 유도하는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덧글

  • 유월비상 2016/03/22 23:11 # 답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몇 가지 첨언하자면,

    1. 노동유연성이 높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해고되기 쉬워지는 대신, 재취업도 쉬워지거든요. 특히 고임금 정규직 일자리 재취업이요.
    특히 한국처럼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가 적어 경쟁이 치열한 나라에선 이게 큰 이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노동 안전성이 악화된다는 건데, 이는 사회보장 및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영미권이나 북유럽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요.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노동개혁도 그걸 염두에 두는 것 같더라고요.

    2. 학제개편은 할 수 있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학제를 단축하는 건 좋은데, 그 전에 인간의 사회화과정과 교육과정을 고려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취학 연령을 조절한다면
    아동은 몇 살 때 부모 없이 또래끼리 놀 수 있는가, 이 내용을 이 인지능력을 가진 아동들이 이해할 수 있는가.
    이게 최우선이 되야 합니다.
    안 그러면 학생들만 고생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건 없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거든요.

    3. 물론 이직 관행을 도입하는 것도 좋습니다. 선진국들은 다 이렇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다만 이 관행을 도입하는 덴 중소기업-대기업 차이를 궁극적으로 줄이는 게 제일 좋다 봅니다.
    일단 하청 후려치기나 기술유출부터 줄여야 할 것 같네요.
  • 갭필러 2016/03/22 23:39 #

    답글 감사합니다. ^^

    1. 제 글이 노동 유연성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나요? 그랬다면 큰일인데요. ^^;;; 저는 시장주의자(그게 무슨 뜻이든 간에)입니다. 노동유연성이 높아지는 것이 전체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글에서 어렵다고 얘기한 것은 현실적인 장벽이 워낙 높다는 뜻이었습니다.

    2. 교육계 분들이 안그래도 이런 이유로 많이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나라 학생들이 과잉지식교육이 되고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라 믿습니다. 교육계 분들은 부정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학생들은 지금도 선행학습과 사교육 없이는 제대로 이수하기 버거울 정도의 양의 내용을 배우고 있습니다. 학제개편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배울 내용도 일정부분 줄이고 일부는 대학 등으로 넘기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그걸 못한다면 말씀하신 대로 학생들만 괴롭히는 꼴이 되겠지요.

    3. 중소기업-대기업 차이의 해소도 중요한 문제지요. 하지만, 지금 이슈와는 조금 별개인 것 같습니다. 하청 후려치기나 기술유출 모두 계약이나 법의 엄정한 집행의 문제입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잘 안되는 부분은 있지만 하루이틀 고쳐서 될 문제는 아니니 계속 노력해야겠지요. 하지만 제가 제시한 부분은 중소기업이나 대기업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손해가 아니라 양쪽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술유출을 인력유출과 같이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데 둘은 분명히 다릅니다. 대기업끼리라도 경쟁기업에 기술을 빼낼 목적으로 인력을 스카우트할 수는 없듯이 중소기업-대기업 간에도 그건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모든 과제들을 병행하여 추진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3.
  • 유월비상 2016/03/23 00:00 #

    1. 저도 갭필러님이 노동개혁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님이 말한 현실적인 장벽을 감안해도 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 네. 그런 부분도 고려해야겟지요.

    3. 사실 제가 제시한 것도 하나의 면모일 뿐이라.. 다각도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 漁夫 2016/03/23 13:17 #

    2. '아동은 몇 살 때 부모 없이 또래끼리 놀 수 있는가'

    이건 전통 사회에서는 거의 '4세 부근(다음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입니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 아동의 환경이 좀 다르다는 것도 고려해야겠지만, 여기서 크게 다르진 않다고 봅니다.

    3. 저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이 인력을 더 높은 봉급을 주고 데려간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일하면서 능력이 나아질 텐데 그만큼 대우를 못 해 주니 잃는 것이죠. 능력 있는 사람을 잡고 있을 만큼 돈이 없는데, 그 사람을 계속 거기 머물라면 무리입니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입니다. 가령 중소기업에 대한 지나친 세금 혜택 등은 '중소기업 졸업 의지'를 꺾겠지요. 이러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할 테고, '영원히 중소기업'일 테니까 말입니다.
  • 갭필러 2016/03/23 14:18 # 답글

    유월비상님, 어부님 두 분 다 감사합니다. 기본적으로 제 생각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시고 유익한 말씀들이십니다.

    중소기업의 문제는 너무 다양해서 쉬운 해결방안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포기해야 할 건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죠. 그게 뭐 중소기업 만의 문제겠습니까만. ^^
  • 다시자 2016/03/26 01:11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원칙적으로는 노동유연성 확보와 복지 강화가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주변에 대기업 정규직들은 정년퇴직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냥 지레 겁먹는 걸까요? 게다가 제가 직장에서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그래서 제 편견일 수 있는) 완전 비보호에 완전 경력 인정받는 비정규직으로 돌아가는 업종을 보면요, 노동유연성을 통해 문화가 바뀌고 회사의 불합리한 요구에 당당히 거절하고, 그런 일은 없더라고요. 더 전전긍긍해요. 이게 문화 문제인지 복지나 직업교육 문제인지 아님 다른 뭔가의 문제인지 모르겠네요.
  • 갭필러 2016/03/28 15:44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정규직이라고 해서 다 철밥통은 아니고 사실 기업이 내보내고 싶으면 어떤 식으로든 내보내지요. ㅠㅠ 말씀대로 노동유연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실업의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요. 사실 노동유연성을 해고의 자유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것보다는 이직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활용도가 없어질 때가 된 후에 회사가 자르기 쉽게 되는 것만을 유연성이라고 한다면 저부터도 반대하고 다니고 싶습니다. ^^ 말씀하신 업종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기 전에는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정말 그런 상황이라면 여러 원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직장을 자주 옮기는 것이 적응하는 데나 본인 경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요. 업계 전체의 상황이나 문화가 다르게 형성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적 네트워크가 tight하게 얽혀 있는 업계에서는 A라는 직장에서 찍혀서 나오면 다른 직장에서도 명성(?)이 이미 퍼져있는 식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정말 견디기 힘들때 때려 치우더라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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