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스턴 학살 > 법제도와 정치

문득 생각이 났는데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우연히 미국의 제2 대통령인 존 애덤스의 일대기를 다룬 미니시리즈를 본 적이 있다. 첫 회였는데 존 애덤스는 1770년에 일어난 보스턴 학살(Boston Massacre)이라고 불리는 사건에서 피고인 영국군인들의 변호를 맡는다.

보스턴 학살은 한 영국인 병사와 가발을 맞추는 상점의 사환 간에 일어난 사소한 시비가 집단 시위로 번졌고, 위협을 느낀 영국군의 발포로 다섯 명의 시민이 죽은 사건이었다.이 사건은 당시 영국지배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좋지 않았던 감정과 관련이 깊다. Paul Revere나 Samuel Adams같은 이른바 '애국자들(patriots)'은 이 사건을 독립운동의 불씨로 삼기 위해 열심히 반감을 부추기는 선전에 나섰다. 불과 6년 후 미국독립선언으로까지 이어졌으니 성공한 셈이다.

아무튼 이미 잘 나가는 법관이자 정치적 명성도 있었던 존 애덤스는 만인의 공적이 되어버려 아무도 감히 변호를 맡으려 하지 않았던 영국 군인들을 변호해 줄 것을 의뢰받는다. 미니시리즈는 그가 겪었던 고뇌,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겪는 수모와 비난 등을 실감있게 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건에서 존 애덤스는 대단한 활약을 하였다. 결국 발포를 하지 않은 여섯 명의 군인은 무죄판결을 받았고, 발포를 한 두 명도 고의적 살인(murder)에서 과실치사(manslaughter)로 감형 받았다. 그가 남긴 변론의 일부는 지금도 미국에서 인용구로 종종 쓰인다.

"진실은 굳건한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나 성향, 또는 우리의 열정이 이끄는 방향이 무엇이든 간에, 그를 통해 사실과 증거가 바뀔 수는 없습니다."
Facts are stubborn things; and whatever may be our wishes, our inclinations, or the dictates of our passion, they cannot alter the state of facts and evidence

"유죄를 벌하는 것보다 무죄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나 범행은 워낙 많아서 그들 모두를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무죄인 사람을 법정에 세워 유죄 선고를 하고, 혹시 사형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시민들은 말할 것입니다. '내가 죄를 범하든 말든 상관 없어.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보호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시민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는다면 어떠한 안전도 다 끝일 것입니다." 
It is more important that innocence be protected than it is that guilt be punished, for guilt and crimes are so frequent in this world that they cannot all be punished. But if innocence itself is brought to the bar and condemned, perhaps to die, then the citizen will say, 'whether I do good or whether I do evil is immaterial, for innocence itself is no protection,' and if such an idea as that were to take hold in the mind of the citizen that would be the end of security whatsoever.

흥미롭게도 판결 이후 존 애덤스는 만고의 역적으로 취급받지도 않았으며, 그의 주가는 더욱 치솟았다. 이후 그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였으며, 신생국 미국의 기틀을 잡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제1대 부통령과 제2대 대통령이었고, 제6대 대통령 John Quincy Adams와 함께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 대통령이기도 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미국의 founding fathers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나와 소신껏 활동할 수 있었던 18세기 식민지의 성숙한 사회적 기반이 더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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