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세 논쟁에 대한 간단한 생각 > 일반경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법인세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 오는 듯 하다. 자세하고 어려운 설명은 조세재정전문가들께서 해 주셔야 하고, 유권자인 일반 시민들을 위하여 (실제로는 모자란 내 능력범위를 감안한) 경제원론 수준의 기본적 내용만 짚고 넘어가 보려 한다.

한국의 법인세가 명목세율은 높은데 실효세율은 낮으니 하는 논쟁은 사실 기본적 질문을 한참 거친 후에 나와야 적당한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점심메뉴를 아직 결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회사앞 식당의 설렁탕이 딴 집보다 싱거운지 아닌지를 싸우는 꼴이다. 최종적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한 번은 던져 봐야 하는 질문이고, 때로는 결정에 의외로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지엽적인 요소라는 뜻이다.

법인세 논쟁을 보면서 오늘의 점심메뉴를 고를 때 나오는 수준의 날카로운 지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세금의 기본적 속성부터 하나씩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1) 모든 세금은 필요악이다.


세금을 많이 낼수록 행복한 사람은 없다. 나 말고 남이 내는 세금이라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그런 심성을 가진 분은 그냥 이 글을 그만 읽어 주시면 되겠다. 아무튼 모든 세금인상은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한 경우에 부작용과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간신히 해야 하는 것이지 '다른 나라는 많이 내니까 우리도 올릴 수 있다'라고 쉽게 주장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2) 모든 세금은 사람이 내는 것이다.


세상에는 온갖 명목의 다양한 세금이 있지만 결국 이를 부담하는 것은 사람이다. 세금은 돈에서 나오고, 돈은 결국 누군가 벌거나 갖고 있거나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법인세의 경우에는 흔히 오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업도 사람의 모임일 뿐이다. 기업에 법인세를 부과하면 '기업'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과 연관된 '사람들'이 세금을 낸다. 그러면 왜 그리 다양한 세목이 있냐고? 거위의 털을 뽑는 다양한 방법일 뿐이다. 거위의 입장에서 보면 목에서 뽑히나 가슴에서 뽑히나 엉덩이에서 뽑히나 어차피 모두 자기 털이다.


3)국세청에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이 실제로 세금을 내는 사람은 아니다.


친구들과 식당에 갔다. 돈을 내는데 (1번) 계산서를 각자 받아서 따로 나간다 (2번) 한 사람에게 돈을 몰아주고 그 사람이 대표로 계산을 한다. 이 때 1번과 2번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계산대 앞 풍경은 다를지 몰라도 실질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명목으로 누가 세금을 납부하든 지 간에 그 세금이 결국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는지는 따로 평가해야 한다. 이는 '조세의 전가(tax incidence)'라고 해서 초급 경제원론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부가세는 사업자가 모아서 납부하지만 실제로는 소비자와 사업자가 나누어 부담한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부가세가 붙으면 상품가격이 비싸지는 방식으로 자신도 이를 부담한다는 것을 알지만 평소에 상품가격이 비싸다고 불평할 때는 보통 그 부분까지 고려하게 되지는 않는다.

법인세의 경우에는 이보다 혼란이 훨씬 더 큰데, 부담하는 주체가 여럿이고 어떤 식으로 부담하는 지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법인세는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분담하여 낸다. 여기에는 주주, 종업원, 소비자, 심지어 하청업체까지 포함되어 있다.

법인세를 실제로 누가 많이 부담하고 있느냐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는 넘쳐나지만, 명확한 결론은 없다.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전제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한다'이다. "아 힘들어 못해 먹겠어, 때려 치우든지 딴 데로 가든지 해야지"라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현실은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오늘날과 같이 자본과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경제에서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 중에 가장 아쉬운 사람은 누구일까? 자본이나 소비자보다는 종업원이나 하청업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신의 임금이 오르지 않거나 깎이고, 하청업체가 가격 후려치기를 당하는 순간, 나아가서 직장과 거래처가 외국으로 사라지는 순간에는 법인세에도 책임의 일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기는 어렵다.

물론 상황이 늘 이렇게 흘러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증적인 문제이므로 실제로는 주주에게 대부분의 부담이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주주 중에서도 누가 더 부담하냐고 하면 물론 주식 보유 비중에 따라 비례적으로 부담할 것이다. 한 가지 문제는 모든 주주들이 고액 자산가나 재벌총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재벌총수는 원래 주식비중은 적으면서 경영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욕먹는 사람들 아닌가? 총수가 1%의 지분만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면 법인세 부담도 1%만 할 것이다.


4) 모든 세금에는 부작용이 있지만 성격은 다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소득세를 올리면 소득창출 행위가 줄어들 것이고, 부가세(소비세)를 늘리면 소비가 위축된다. 법인세를 늘리면 기업활동이 위축된다. 이 모두가 줄어들고 위축되어서 좋은 게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왜곡은 어차피 있는 것이고, 초점은 어떤 것이 그나마 부작용이 적고 그나마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고, 처한 상황마다 다르며, 영원한 논쟁거리다. 고소득자라면 돈 만을 위해 일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누진세로 인한 근로의욕 감퇴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같은 이유로 완전히 반대일 수도 있다). 소비세로 소비가 위축되면 대신 저축과 투자는 많이 할 테니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소비부진이 문제인 상황에선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 투자할 곳이 없고 사업전망이 나빠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지 법인세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다 (그러니까 비수를 꽂아도 된다?).

무엇이 더 중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대가를 치르지 않는 선택은 없다는 것이다.


5) 정치적 수용가능성


지금까지 읽으셨다면 "얘는 법인세 인상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이다. 그렇다. 내 입장은 "세금은 가능한 적게 걷을 수록 좋지만 꼭 걷어야 한다면 법인세보다는 다른 세금부터 올리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세가 불가피하고 실천 가능한 방법이 법인세 인상밖에 없다면 그게 대안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가 아무리 햄버거가 균형잡힌 최고의 음식이라 믿어도 같이 식사할 동료들이 설렁탕이 좋다는데 끝까지 우기다가 굶을 수는 없지 않은가?

법인세는 정치적 수용가능성 면에서는 확실히 잇점이 있다. 누가 실제로 부담하는지도 잘 모르고 따라서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눈에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세금에 비해 국민적 반발 정도가 덜하다. 연말정산 때 공제만 조금 줄어 들어도 좌우협동 대란이 일어나는 우리나라에서 이는 중요한 잇점이다. 정치인들, 특히 대중영합적 포퓰리스트의 관심을 더 끌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사정을 좀 아는 사람일수록 곱게 보이지는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비난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증세가 꼭 필요하고 법인세 인상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 결론


책임있는 경제학자인척 하는 사람으로서는 열린 결말이 좋을 듯하다. 법인세 인상은 우리 경제에 최선은 커녕 최악일 수 있지만, 그나마 가능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는 정도면 적당하겠다.


PS. 

하지만, 순진한 나로서는 정공법을 택하는 후보가 나타나기를 열망한다. 먼저 왜 정부지출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인지부터 설명하고, 다음으로 손쉬운 증세보다는 세출조정과 정부효율성 강화부터 먼저 할 것임을 선언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증세액에 대해서는 모두가 나누어 부담하자고 호소하는 그런 후보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보장세와 같이 지출목적이 확실히 드러나는 세금을 신설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세원으로는 급여부담금이나 부가세를 인상하는 것이 좋다고 보지만 너무 디테일한 얘기가 되니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덧글

  • Arcturus 2017/01/17 00:36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법인세는 노동자에게 전가되며 세율은 낮은 게 좋다... 정도로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군요:)
  • 갭필러 2017/02/02 17:09 #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오리 2017/01/20 20:05 # 삭제 답글

    불평등 관련 연재글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올리신 글도 잘 읽었습니다.

    법인세 논란은 결국 각종 감면을 포함한 실효세율로 봐야 할텐데요. mb때 감면조항 그대로인 채 세율을 낮추었고
    ㄹ혜는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을 고려, 감면 쪽을 손 본다고 했지만
    10대 대기업은 오히려 늘었고 중소기업 쪽만 손해를 봤다고 대충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 이준구 명예교수에 의하면 세금감면의 투자 유인의 양(+) 효과 분석에 관한 논문이 전무하다고 합니다.
    내가 기업인이라고 가정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재원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제 투자하는 것은 투자수익률을 고려한 투자기회인 거 역시 당연하죠.
    이를 반증하는 것이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가 막대할 뿐만 아니라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말씀하신 것 처럼 법인세율에 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적으로 중요하지만
    재정지출의 효율화가 결국 관건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이런 면에서 별로 생각이 없어 보이는 문재인 보다는 이재명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요즘 차차기는 없다는 생각에 조급해져서 악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네요!

    어쨌든 새해에도 건강, 건필하시고 댁내와 두루 형통, 평안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갭필러 2017/02/02 17:17 #

    감사합니다. 법인세와 다른 세금의 다른 점은 국가간 세율인하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인데요. 국내 정치적으로는 법인세 인상이 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일지 몰라도 막상 증세시점이 되면 책임있는 정치가는 그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증세가 그만큼 어려우니 재정지출 효율화 노력이라도 이루어져야 할텐데 어느 정부도 그런 고통은 또 감수하려 하지 않지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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