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비극에 대한 FT와 Ricardo Hausmann의 대화(번역) 일반경제

< 아래 글의 원문은 다음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인터뷰 podcast는 다음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인명이나 대화체로 인한 불필요한 내용들은 일부 번역에서 제외했습니다>  
 

CG: Cardiff Garcia (FinancialTimes 기자)

RH: Ricardo Hausmann

 

CG: 좀 더 넓은 관점에서 현 사태를 보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역사로부터 시작하고 싶네요. 1950년대 말 잠깐 독재정권을 거친 후에 베네수엘라는 민주주의를 회복했고, 1970년대는 석유로 인한 큰 호황과 불황을 겪었죠. 그 시절에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어땠는지, 어느 정도 석유산업에 이미 의존하고 있었는지그로 인한 왜곡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는지 등을 얘기해 줄 수 있나요

 

RH: 석유는 1925년에 베네수엘라의 최대 수출품목이 되었고, 1929년에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석유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1965년까지도 줄곧 그랬죠예컨대 1925~1975년의 50년 동안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성장하는 국가였습니다. 남미의 매우 가난한 국가로부터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왔는데, 인구가 7백만 정도 되던 나라에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에서 70만 명 쯤이 이민을 왔고요. 이웃 콜럼비아에서도 100만 명 정도가 왔을 겁니다

 

그렇게 흡인력이 있었죠. 부유하고, 번영했으며, 엄청난 자원을 바탕으로 인프라 투자를 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면서 교육, 보건, 공공주택 등을 우선순위로 두었습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육까지 무료로 제공했죠. 전기나 수도료도 아주 쌌고요. 국가가 중심이 되어 웅장한 계획들이 세워졌는데, 철강, 알루미늄, 조선 등등에 투자를 했지만 1980년대에 이것들이 큰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상황이 아주 나빠졌습니다그리고 당시의 정부는 석유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단기적 현상이라고 믿었고, 움츠리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통제를 하며 기다리면 좋은 시절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25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죠. 그래서 1989년쯤 되자 정부는 더 이상은 견딜 수 없고 규제를 완화하고, 구조조정과 개방을 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이게 정치적으로 매우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1992년에 차베스가 군사 쿠데타를 시도했고, 그 결과 1993년에는 개혁을 반대하는 대통령이 선출됐는데 1996년이 되자 그도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1997, 8년에는 개혁의 성과가 나와야 하는 시기였는데, 석유산업과 생산부문 개방의 성과로 오랜 만에 대량증산이 될것으로 기대했죠. 그런데 1998 1월이되면서 유가가 폭락했고, 8월에는 러시아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습니다.그 결과 이머징 마켓 전반으로 악영향이 전파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도 유가하락과 금융위기 전파의 효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해 12월에선거가 있었는데, 휴고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죠

 

CG: 1980~1990초에일부 개혁시도가 있지 않았나요? 석유산업의 문제도 있었고 IMF의권고도 있었고요. 이런 것들이 1988년의 Perez대통령 선출 이후에 시작되었는데 그건 왜 잘 안된 거죠? 또는 왜 그리 인기가 없었죠?

 

RH: 제 생각에 Perez는 거대한 재정적자(GDP 10%)를 승계받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에 접근도 할 수 없었고, 외환보유도 마이너스였죠. 그 상황에서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 도움의 요청, 부채조정 및 개방뿐이었어요. 이전 정부가 1986년 유가폭락 기에 외환보유를 다 써버렸으니까요. 그의 첫 임기에는 유가가 4배가 올랐습니다. 두 번째 임기에는 나눠 줄 것이 없었죠. 제 생각에는 이념이나 정치적 변화 같은 거라기 보다는 상황 변화 때문에 개혁에나선 것이라고 봅니다. (역주: 질문을 Perez가 왜 개혁정책을 썼는가로 약간 오해한 듯함)

 

CG: 정확히 말하자면 Perez의 첫 임기는 1970년대였죠. 저는 그의 두 번째 임기 때 얘기를 하는 것이고요. 그는 반개혁론자인 Caldera 대통령의 뒤를 이어서 대통령이 됐습니다. 차베스가 포퓰리즘을기반으로 집권했을 때의 베네수엘라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주겠습니까?

 

RH: 과거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는 정쟁이 매우치열했다는 겁니다. 여당이 된 정부나 정당이 다음 선거에 재선될 확률이 50%도 되지 않을 정도였죠. 하지만 80~90년대의 상황이 매우 안 좋다보니 차베스는 상당히 매력적인 담론을 펼 수 있었습니다. 정쟁이 아무리 심해도 다 똑같은 정치인들끼리 하는 짓이지만 자신은 그와 다르다는 거죠. "여러분들이 못 살게 된 것은 부패한 정치인들 때문이다. 내가 나서서 여러분이 빼앗긴 돈을 회복하겠다"라는 거죠그것이 그의 원래의 담론이었고, 정권을 잡게 된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니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몰아낼 개혁가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구태 정치의 정당을 몰아내고 새로운 종류의, 좀 더 군부적 성격을갖는 정치 리더쉽으로 체제를 변환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CG: 맞습니다.좀 더 군부적 성격의 정치 리더쉽이자 그의 개성을 기반으로 한 추종집단이 되었죠. 그가 집권한 기간의 정책을 얘기하기 전에 잠깐 그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사용한 레토릭이나 포퓰리즘 전술에 대해서 알고 싶네요. 서방의 합리주의자 기준에서 보면 말이 안되는 일들을 벌이면서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정치적 능력이나 언어들은 무엇이었다고 보시나요?

 

RH: 집권초 2년 정도 그는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임기를 늘리고, 재선확률을 높이고, 국회를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변화시켜 유순하게만들고, 사법 시스템을 전면 개편할 권한을 확보하는 등의 작업이죠. 경제에는 크게 손대지 않았습니다. 전임 대통령 때 임명된 재무장관을 유임시키고 정책에도 별 변화가 없었죠. 그러다 2000년에 새 헌법으로 재선되고 나서 경제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과거보다 유순해진 국회를 향해 대통령에 법률을 공포할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죠 그리고 하루만에 48개의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사전 심의도 전혀 없이요. 그로 인해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고, 실제로 48시간 동안은 실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기는 크게 떨어졌고 분위기는 나빴죠.  

 

그러자 그는 석유회사들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회사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석유회사가 파업에 나서자 3 5천 명 직원 중 2만 명을 해고하고 직접적인 통제에 나섰죠.  당시에 그는 인기가 떨어지고 대규모 정치적 저항에 직면해 있었는데 마침 유가가 상승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의 진짜 포퓰리즘 정책은 정권 초가 아니라 2003~4년에 시작된 겁니다. 그는 석유로 번 돈을 이용해 대규모의 복지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쿠바로부터 조언을 받은 것들이죠.

 

2003년 근방에 그는 환율통제와 가격통제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파업으로 인한 석유생산 중단 등 위기 대응용으로 시작된 건데 2004년 이후에 유가가 상승하고 외환보유고가 늘면서 이제는 통제를 풀어도 됐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그들은 이를 민간섹터에대한 통제수단으로 지속시켰습니다. 민간부문을 길들이고 정부관료들이 하는 결정에 목을 매도록 하는 방법이었죠. 이런 논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우리는 정부지출을 늘릴 거지만 가격을 통제하고 있으니까 물가는 오르지 않을거야. 수입도 통제하고 있으니까 외환문제도 나지 않을거야" 또한 그들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믿기 힘든 거액을 국제시장에서 빌렸죠.  국제 자본시장은 베네수엘라에 기꺼이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엄청난 석유자원이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석유 매장량이 세계 제일 수준인데다가 유가는 상승 중이었으니 담보의 가치도 같이 올라갔죠. 2004년에 베네수엘라의 외채 규모는 250억불정도였는데요, 지금은 178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됩니다. 석유 호황기에 7배 정도 늘어난 셈이죠

 

CG: . 그런데명확히 하자면 제가 말하는 포퓰리즘은 경제적 포퓰리즘이나 반엘리트 주의뿐 아니라 20세기 남미에서 만연한 반다원주의나 배타적 포퓰리즘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컨대 그가 경제정책을 변화시키기 전에 실시한 초기의 제도적 변화도 매우 포퓰리즘적 접근이라 느껴지는군요. 국영 석유회사의 직원 2만 명을 해고한 사례도 흥미로운데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칠 만한 상당한 두뇌유출과 인적자본의 손실처럼 보이는 군요

 

RH: 엄청난 손실이었습니다. 석유회사의 경영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감을 드려 보죠. 1998, 차베스 집권 직전 연도에 베네수엘라는 하루에 370만 배럴의 석유를생산했습니다. 지금은 2백만 배럴 정도를 생산하죠. 베네수엘라가 당시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면-엄청난 매장량을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지금보다 2백만 배럴은 더 생산했겠죠. 그러니 역사적으로나 날아간 기회비용 측면으로 보나 엄청난 붕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유산업의 붕괴는 두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대량해고로 인해 산업에 축적된 모든 노하우와 수백 년의 경험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해고되었을 뿐 아니라 박해를 받아 많은 이들이 나라를 등졌죠. 그 덕에 이웃 콜럼비아에 석유 붐이 일어났습니다. 석유 채굴기술이 뛰어난 베네수엘라 기술자들 덕에 콜럼비아는 똑같은 유정에서 하루 20만 배럴 생산하던 것을 지금은 100만 배럴씩 생산합니다. 둘째,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석유회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석유회사로 하여금 엄청나게 많은 사회적 프로그램들을 후원하도록 만들었죠. 그 결과 회사는 투자재원이 고갈되고, 경영의 부패도 엄청났습니다. 외국 석유회사들이 정부에 석유 조달 프로젝트 비용이 실제보다 몇 배씩 부풀려진다고 불만을 표시하거나, 국영 석유회사에서 수백만 달러씩 빼돌린 사람들이 미국에서 적발되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죠그러니 그들은 황금알을 낳는 닭을 망친 게 맞아요. 당시에 그들 자신이 만들어서 발표한 계획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을 6백만 배럴까지 늘리겠다는 거였습니다. 늘리기는 커녕 엄청나게 줄어드는 것도 막지 못했죠

 

CG: 아까 유가 상승기의 가격 및 외환통제 얘기를하셨는데요. 그 외의 다른 정책, 특히 국유화를 포함해 민간에 영향을 미친 정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RH: 2004년부타 외환 및 가격통제가 실시되었는데요. 차베스는 2006년에 재선에 성공합니다. 2007년 초에 그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대규모의 국유화를 시작합니다. 당시는 유가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힘이 있었죠. 예를 들어 그는 Verizon이 소유했던 통신회사를 국유화했고, 멕시코기업들이 가지고 있었던 3개의 시멘트 회사, 최대 규모 은행중의 하나, 슈퍼마켓 체인 등도 국유화했습니다. 370만헥타르에 달하는 토지도 국유화했죠. 초기에 돈이 많을 때는 대금을 지불을 하고 샀지만, 그가 싫어하는 사람이 소유한 경우에는 그냥 몰수해버리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석유회사들과의 계약을 변경해 미래의 기대수익을 당겨서 꺼내 쓸 수 있도록 만들었죠. Exxon 등 몇 개 외국 정유사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국제 재판소 판결절차가 진행중인데요. 합하면 소송규모가 160억 달러에 달합니다. 외국인에 대한 것만 그렇죠

 

차베스는 석유회사에 용역을 제공하던 회사들도 몰수했는데요. 그들이 제대로 대금지불을 받지 못한다고 항의하자 아예 몰수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베네수엘라 경제의 상당부분을 장악했는데요, 그들이 장악하고나면 회사가 무너져 버리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습니다. 생산이 붕괴되어 버렸죠. 철강회사 국유화를 예를 들면 국유화 당시에는 5천명의 근로자가 450만 톤의 철강을 생산했는데, 지금은 2 2천 명의 근로자가 20만톤 가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알루미늄 생산량이 100만톤정도가 됐는데 지금은 사실상 생산량이 0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한 일은 경제를 몰수해서 공공화시킨 뒤 붕괴시킨 겁니다. 또한 민간 섹터에서도 많은 제약들을 부과하는 동시에 재산권에 대한 불확실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른 이들의 재산이 전부 국유화고있는데 언제 내 차례가 올 지 알 수 없으니까요. Owens-Illinois는 병 제조공장이었는데 국유화되었어요. 병을 왜요? 다른 회사는 세제를 제조하는 업체인데 국유화 됐어요. 세제를 왜요?  그런 식이니 다른 모든이들은 언제 자기차례가 오게 될 지 알 수 없었던 겁니다.

 

CG: 이 정책들은 경제의 기본 측면에서 확실히 문제가 있는데요, 이런 정책들을 실시하면서도 차베스는 어떻게 인기와 권력을 유지했을까요? 그가 석유 수입을 바탕으로 해외차입을 해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지속되기는 어려워도 많은 이들이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의 개인적 매력이 작용한 걸까요? 아니면 둘 다일까요?

 

RH: 물론 차베스는 확실히 독특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2012 10월선거 전 여론조사에서...질문이 '나라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였는데 60% 이상의 국민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잘 몰랐던 것은 그 해에 석유가격이 104(달러?)였는데 정부가 GDP 18% 재정적자를발생시키고 있었다는 것이죠. 18% 적자는 무시무시한 숫자입니다. 그리스 정부가 겪은 최악의 시기에도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석유 호황기 한 가운데여서 수익을 비축해 놓고 있어야 할 시기에 18%의 재정적자를 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죠.  거꾸로 계산해 보면 당시 상황에서 재정균형이 가능하려면 유가가 200이 되었어야 했어요. 말하자면 그는 2012년에 마치 유가가 200이나 되는 것처럼 돈을 쓰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생산의 비효율성이나 그런 것들은 석유수입이 많았기 때문에 덮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돈을 재분배하는것으로 사람들은 만족했으니까요.

 

CG: 알겠습니다. 그럼 2012년부터 현재 마두로 정권까지의 기간으로 넘어가 보죠. 어떤 것들이 바뀌고 또 바뀌지 않았나요? 그리고 현재의 베네수엘라의 붕괴 상황에 대해서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RH: 아마 차베스는 다른 이들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정확히 언제 죽어야 할 지 알고 있었습니다.그는 2012 12월에 공식석상에서 사라졌고 2013 3월에 죽었죠. 그 즈음에 자본시장에서는 당신들이 너무 많은 돈을 빌려서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말합니다. 베네수엘라는 2007년부터 중국에서 엄청난 금액을 빌렸습니다. 차입액이 560억 달러에 달하는 데요, 올해 베네수엘라 총 수입액이 160억 달러입니다. 그러니 총수입의 3.5배 수준을 빌린 거죠. 2013년이 되자 사람들은 베네수엘라의 해외차입액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2013년 내내 유가는 여전히 100달러 수준이어서 아직도 높았지만, 베네수엘라는 더 이상 전처럼 돈을 빌릴 수 없었고, 국내경기는 불황에 돌입했습니다. 환율은 급등했고, 암시장 환율은 수백퍼센트씩 절하됐죠.

 

그리고 2014년 여름이 되자 유가가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렇게 되자 금융시장은 물론 석유판매 수익도 끊기면서 수입품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사라졌죠. 수입업자들은 조금만더 조금만 더 하면서 기다렸지만, 결국 대금이 지불되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베네수엘라를 떠나기 시작했죠. 항공사 같은 회사들은 문자 그대로 떠나버렸습니다. 받지 못한 빚이 40억 달러에달하자 운항을 중지해 버린 것이죠. 지금은 베네수엘라를 드나드는 여객기의 숫자가 매우 적습니다. 어느 정도로 단절되었냐면 쿠바로 드나드는 운항편의 수가 베네수엘라보다 5~7배쯤 많을 겁니다.

 

더 이상 빚을 질 능력이 없던 정부는 두 가지를 결정합니다. 첫째는 월스트리트의 부채는 계속갚겠다는 것인데, 자본시장이 막혀서 부채를 연장할 방법도 없지만 말이죠. 다음으로 그들은 월스트리트는 석유 판매 수익을 버는 곳이니까 빚을 갚고, 그 외의 다른 부채에 대해서는 전부 채무 불이행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그걸로 수입(import)을 하고요. 이 결정의 결과로 전체 수입(import) 80%, 민간부문 수입의 90%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원자재도, 중간재도, 부품도, 자본재도 사 올 수 없었죠. 이는 국내생산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공식 통계상으로 1인당 GDP의 감소분은 37%입니다만, 유가하락의 소득효과까지 계산하면 국민소득은 50%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거기에 정부와 공공부문의 과측정 및 기타오류 등을 제외하고 농업, 광공업, 건설 등 실물부문만 보면 경제의 축소분은 55%가 넘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산도 소득기반도 붕괴되었죠. 최저임금의 수준을 보면, 베네수엘라에서는 물가상승률이 엄청나서 사실상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이 되어 버렸는데요, 암시장 환율 기준으로 측정된 중위 임금 수준은월 20달러 정도입니다.

 

아마 암시장 환율 기준으로 측정된 임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섭취열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측정해 왔습니다. 임금을 이용해 시장에서 가장 싼 식품들을 구매하면 섭취열량을 얼마까지 높일 수 있느냐를 본 것이죠. 2012년 계산에서는 최저임금으로 한 가정이 하루에  55천 칼로리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7천 칼로리에 불과합니다.그러니 당신이 중위임금으로 5인 가정을 지탱하고 있다면,소득 전부를 오로지 먹는 것에만 사용해도 생존이 어려울 지경이죠. 집이나 신발, 교통 그런데 드는 돈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요.

 

1인당 소득이 이해하기 힘든 수준까지 낮아지자 의료보건같은 공공서비스의 붕괴도 나타났습니다. 믿을 수 없는 정도로 말이죠. 사람들이 글로 쓰는 내용들을 보면 퓰리처 상을 확실히 받을 것 같은 사연들이 넘쳐납니다. 생존율 감소나 이미 사라진 전염병의 부활 같은걸 보면...베네수엘라에서는 1961년에 말라리아가 사라졌습니다. 미국보다도 먼저였죠. 현재는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고요, 홍역도 엄청나게 돌고 있습니다. 에이즈 치료약도 없고, 고혈압 치료약도 없습니다. 신장투석기도 없고 암치료약도 없죠. 보건수준의 몰락뿐 아닙니다카라카스(역주: 베네수엘라의 수도)는이제 살인 범죄율이 세계 최고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세계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을 앞서게 되었죠. 이게 생활수준의 몰락이 빚은 일들입니다.

 

금융적 시사점도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이 너무 빨라서 사람들이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화폐는 아무도 붙들고 싶지 않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죠. 경제학적 용어로 화폐의 유통속도가 크게 올라가면 경제에 도는 돈은 어떤 면에서 점점 줄어듭니다. 보통 M2라고 부르는 통화량이 2012년의 암시장 환율로는 550억 달러 정도 되었는데, 지금은 30억 달러밖에 되지 않습니다. 은행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전부 2억 달러가 채 되지 않아서 시스템이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여전히 지점이나 ATM 등은 남아 있는데 자산의 가치는 80% 이상사라져 버린 것이죠.

 

CG: 공식적 통계수치는 실제 참상에 대해 저평가하고있다는 말씀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서방사회에 비교할 만한 사건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요. 지금 생각나는 것으로 1990년대 초 소련의 쿠바에 대한 보조금이 중단되자 쿠바경제에 실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는 독자로부터의 다음 질문으로 연결되는 데요. 경제적 파괴 이후 지금의 요소시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피해가 회복불가능한 수준인가요

 

RH: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첫 번째 중요한 피해는 인재의 대량유출입니다. 두 번 째는 매우매우중요한 사업체들이 사라지고 또 떠났다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상황이 좋아지려면 거시적 정책에 대해서 기업들이 시장에서 창출된 기회를 활용하는 것으로써 화답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업들, 생산을 조직하고 기회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없다면 정책이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경제가 활발히 반응하기는 어렵죠. 그런 면에서 피해는 엄청나고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체제가 바뀐 후에도 옷장에 숨겨진 해골(역주: 지금은 모르고 있는 피해들)을 많이 발견하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알바니아 정부에도 조언하고 있는데요. 알바니아는 45년 간 Enver Hoxha 독재 치하에서 유럽의 북한 같은 존재로살아왔죠. 45년 간 공산주의 체제 하에 있었고, 공산주의가 붕괴하자 경제는 더 피폐해졌습니다. 인구의 1/3이 떠나 버렸고요. 하지만, 지난 20년간 회복의 길을 걸어 왔고 이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제게는 알바니아가 베네수엘라 국민들에 희망의 메시지가된다고 봅니다. 끔찍한 시기를 거치고도 회복과 추스림이 가능하다는 것을요. 삶을 더 살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게 믿고 싶군요.  

 

CG: 당신에게 이 일이 어떤 개인적 의미를 갖는지는 묻지 않았는데요. 베네수엘라인이기도 하지만 정부에 대한 비판적 태도 때문에 기피인물로 찍히시지 않았나요? 당신 개인의 삶에 정부와의 반목이 어떤 경험으로 다가 왔는지 묻고 싶군요.

 

RH: 우선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들이 본국에 많이 살고 있었는데 지난 수 년간 외국으로 많이 떠났습니다. 세계 각지로 흩어졌죠베네수엘라 판 디아스포라인데요, 여기저기 타지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제 친척들과 아이들은 모두 떠났고요,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은 너무 힘들어서 꿈도 희망도 없어졌죠. 저는 대학교수인데 인생의 큰 야망을 품고 졸업하는 학생들을 늘 보면서 지냅니다. 베네수엘라에 사는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은 더 이상 큰 야망을 품을 수 없죠.무너져버린 인생이 가장 큰 고통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물론 정부는 제가 칼럼을 쓴다는 이유로 공격을 하거나 온갖 그럴듯한 음모론을 만들어 뒤집어 씌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잡아 넣을 수는 없으니까 대신 기자인 처남을 감옥에 가두었죠. 그 자체가 우리 가족 모두에 고통의 경험입니다. 그러니 이 억압과 압제, 희망의 파괴가 지난 몇 년간 제 삶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CG: 처남이 투옥된 것은 몰랐는데 안타깝네요. 여전히 수감중인가요 아니면 석방되었나요?

 

RH: 7개월 동안 매우 비인간적인 수용시설에 감금된후에 지금은 가택연금 상태로 있습니다.

 

CG: 다시 한 번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마무리 단계로 베네수엘라의 부채문제 해결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묻고 싶은데요.미국의 제재가 실시 되면서 미국 투자자가 구조조정이나 채권교환에 나서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베네수엘라의 부채를 궁핍화채권(hunger bond)라고 불렀는데요 그에 대해 설명을 부탁합니다.

 

RH: 그러죠대개 자본시장이 자금을 빌려줄 때는 채무자가 그 돈으로 가치를 창출해서 돈도 갚고 자신에게 도움도 되는 그런 상황을 그리게 됩니다. 이런 경우 자본시장은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마치 천사같은 존재죠. 하지만, 미래를 담보로 당장 현금을 당겨 쓰려는 정부와 상대하는 경우에 그 정부는 확보된 자원을 미래가치를 창조하기위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 당신은 권위적 정부의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통치에 돈을 대고 있는것이고 미래에 갚지 못할 짐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나라의 앞날을 망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종류의 부채를 제가 hunger bond라고 부르는 겁니다

 

분명한 사례로서 골드먼 삭스가 정부에 50%의 이율로 8 5천만 달러를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50%의 수익률이 날 수 있는 프로젝트란 세상에 없죠. 그러니 정부는 당장은 8 5천만 달러를 얻지만, 나중에는 능력을 넘어서는 부채를 갚아야 해요. 그런 수익이 날만한 투자 프로그램에 돈을 넣는 게 아니니까요. 이런 부채는 당장의 정권을 유지시키는 목적일 뿐이라는 점에서 추악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한 정권의 부채일 뿐 이지 국가와 국민의 책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권은 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국민의 미래를 보장할 수도 없으니까요.    

 

<이후에 베네수엘라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좀 더 세부적인 이슈들에 대한 약간의 의견교환이 있었는데 이건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궁금하시면 링크의 원문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덧글

  • Arcturus 2017/10/13 21:36 #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특히나 경제를 몰수해서 국유화한 뒤 붕괴시켰다는 부분이 확 와닿네요. 쿠바나 북한처럼 무제한의 원조 없이는 안 굴러가는 나라도 그렇고... 사회주의 국가는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군요.
  • 갭필러 2017/10/13 22:46 #

    읽어 주시고 평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주의가 잘 돌아가기 어려운 시스템이고 종종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넘치게 증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피그말리온 2017/10/13 22:22 # 답글

    '사람들이 글로 쓰는 내용들을 보면 퓰리처 상을 확실히 받을 것 같은 사연들이 넘쳐납니다.'
    우리나라도 그토록 바라던 노벨문학상이 나올 날이 멀지가...
  • Arcturus 2017/10/14 11:35 #

    북한이 2002년에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하면서 "역사상 이런 시도가 성공한 적은 없으나,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란 희대의 명언을 날렸는데 지금 우리 정부도 딱 저 마인드인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ㅠㅠ
  • 학생 2018/06/10 20:36 # 삭제 답글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블로그를 보면서 정말 유익한 걸 많이 배워갑니다~ 실례하지만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댓글을 달았는데요, 요새 경제학계에서 DSGE가 잘 안 쓰인다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오히려 IS-LM으로 돌아간다고 들었는데, 그럼 루카스 비판에는 어떻게 대응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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